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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해남윤씨의 중시조 어초은 윤효정을 모신 추원당 (09. 09. 13)

by 柔淡 2009. 10. 1.

녹우당을 돌아보고 추원당쪽으로 간다.

 

고산 윤선도를 이야기 하기전에 알아야 할 인물이 고산의 4대조 할아버지 어초은 윤효정이다.

녹우당의 역사는 어초은 윤효정이 연동에 터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윤효정은 해남윤씨를 명문집안으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한다. 때문에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시조가 되고있다.

윤효정(1476년 성종7 - 1543년 중종38)은 해남을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는 금남 최부의 밑에서 공부했다. 윤효정은 학문이 뛰어났으며 세 아들을 모두

문과에 급제시키는 등 녹우당 해남윤씨가를 명문사족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윤효정의 큰아들인 윤구(尹衢)는 1516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부교리를 지내다가 기묘사화 때 영암에 유배되어 이후 풀려났으며 기묘명현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송강 정철과 함께 조선시대 우리문학의 쌍벽으로 국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단가 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를 탄생시킨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는 조선후기 삼재의 하나인 문인화가였다. 해남의 유일한 국보인 자화상을 그렸으며, 그의 아들 낙서 윤덕희와

청고 윤용의 3대에까지 그 예술적 재능이 이어진다.

 

해남윤씨는 충신이 많은 집안으로도 알려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해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절한 윤신, 윤륜, 윤치경, 윤동철을 비롯하여

양근군수로 재직중 임진왜란 때 항쟁하다 순절한 윤리경, 그리고 정유재란시 의병을 모집하여 항거하다 순절한 윤익경 등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연동의 형국은 덕음산을 주봉으로 배산(背山, 玄武)하고 좌우에 그 지맥이 안아 싸고 있는 듯한 형상일 뿐 만 아니라 동쪽 계곡에서 원류된 작은 개울이

마을앞 들판을 흘러 임수(臨水)하고 있으며, 들판 건너 안산(말매봉, 문필봉)이 원경(朝山)으로 펼쳐져 있어 풍수가 수려한 형국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형국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남윤씨가는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고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중시조 어초은 윤효정을 모시는 곳이 추원당이다.

이곳 추원당은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고산선생의 고조부(4대조)윤효정(1476년 성종7년-1543년 중종38년/호은 어초은)의 제각으로 1935년에

새로 지었다.시향(時享)은 음력11월 15일 어초은 사당에서 지내고, 이곳 추원당에서는 제관과 참배하는 후손들이 숙식을 하며 문중회의를 한다.

고산 윤선도 고택과 함께 녹우당에 남아있는 건물이다.

 

 

 

 

 

 

 

 추원당도 녹우당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이층처마이다.

 

 붉은 꽃무릇이 고택과 어울려 더욱 요염해 보인다.

 

 

 

 

 

 

 

 

 

 

 

 

 

 

 어초은 사당

 

 


 2009명량대첩축제가 09년10월9일 금요일부터 10월11일 일요일까지 해남군 우수영관광지와 진도군 녹진관광지 일원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