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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양산] 1,300년을 이어온 불보사찰, 통도사 2 - 하로전 (09. 12. 26)

by 柔淡 2009. 12. 31.

통도사는 송광사, 해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불, 법, 승보 3대사찰중 하나인데 그중에서도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신 불보사찰이다.

금년도 드라마로 한창 떳던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불보 사찰답게 규모가 큰 사찰인데 임짐왜란때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그후 중건과 재건을 거듭했다.

영축산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길게 구성되어 있는데 12개의 큰 법당, 20개의 암자, 80개의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가 커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하는데 먼저 입구의 하로전부터 담아봤다.

 

영산전은 하로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좌우에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0년(1704) 송곡선사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하여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으며 그 주변에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있다. 이것은 영조 51년(1775)에 그려졌는데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그림이다. 또한 영조 10년(1734)에 그려진 벽화도 있는데 그 중 18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법화경

견보탑풍변상도’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기교가 특이하고 우수한 작품이다.
통도사 영산전은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벽화와 팔상도를 가진 소중한 문화재이다.

 

영산전과 3층석탑 

 

 

 

 범종루. 통도사 범종이 있다.

조선 숙종 12년(1686)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유일하게 8괘(八卦)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큰 종으로 형태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종 몸통에 있는 사각형의 유곽안에 9개의 돌기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돌기만 새겨 둔 것으로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락보전의 옆모습

 

 

극락전은 하로전의 중심건물인 영산전 동쪽에 있는데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성곡대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은 모두 불화와 산수화로 그려져 있다.
통도사 극락전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건물의 짜임새와 외관이 뛰어난 건물로 18세기 후반의 양식을 나타낸다.

달았으나 측면은 솟을빗살문을 달았으며, 측면에서 보아 전퇴칸(前退間)에만 출입문을 다는 것이 일반적이나 측면 어칸(御間)에도 문을 달았다.
기둥 위로 평방(平枋)을 돌리고 공간포(空間包)를 배치한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의 팔작집으로,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받쳤다. 공포는 내·외2출목
(內·外二出目)을 두었으며 제공(諸工) 내·외부 및 첨차(遮)는 모두 교두형(翹頭形)으로 간결하게 조각되었다. 공포의 상부 부재(部材) 즉 살미 위에는
내·외부 모두 봉두형(鳳頭形)을 조각하였으며, 귀공포 상부에는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다. 내부는 층급(層級)을 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벽체는
모두 불화(佛畵)와 산수화(山水畵)를 채화(彩畵)하였다. 전체적인 구조수법으로 보아 18세기 후반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세루는 법회나 법당의 주요행사를 열 때 사용하던 누각이다.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으로 만세루라 이름을 지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22년(1644)에 영숙화상이 보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기둥의 높이가 길고 기둥 사이가 넓어 대규모의 건물로 느껴진다. 가운데칸 양쪽 기둥 위에 밖으로는 용머리를,

그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새겨 출입구를 강조했다. 내부 역시, 기둥 위와 그 사이에 꽃모양 받침의 장식이 있어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누각은

땅에서 높이 들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건물이 높으면 많은 승려나 신도가 오르내리는데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원래 벽이 없고 기둥만 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 바닥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라는 점을 빼고는 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짜여진 구조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다.

 

 

 

통도사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3.9m 기단폭은 1.8m이며, 기단은 여러 매의 장대석을 사용해 지대석을 구축한 후 올려 놓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부재로 조성되었다.
양식적 특징으로는 첫째, 하층기단의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안상을 조각했다. 신라석탑에서 통도사삼층석탑과 같이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기단부에 안상을 조각한 것으로는 범어사삼층석탑, 안동 옥동삼층석탑, 무장사지삼층석탑, 칠곡 기성동삼층석탑, 술정리서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옥개석의 양식으로 전각의 경쾌한 반전과 낙수홈을 들 수 있다. 보편적인 신라석탑의 낙수면은 곧게 일직선으로 조성되어 전각의 반전이
날렵하게 조성되고 있다. 이같은 예를 실상사삼층석탑과 해남 대흥사 응진전앞 삼층석탑 등에서 볼 수 있는바, 이들 석탑이 모두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볼 때 이 석탑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옥개석의 하면에 조성된 낙수홈은 8세기 석탑에서 시작되어 신라석탑의 보편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되는 바, 이는 석탑이 목조건축의
번안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례로 볼 수 있다.
 
통도사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으로 높이는 3.9m이고 기단폭은 1.8m이다. 기단은 여러 매의
장대석을 사용해 지대석을 구축한 후 올려 놓았다. 하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였으며 6괄호형의
안상을 3구씩 새겼다. 하층기단 갑석은 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고 상면에는 낮은 원호와 각형 1단의 받침을 모출했다.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보이고 있다. 상층기단 역시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고 각 면에는 양 우주와 1주의 탱주를 모각했다. 기단갑석 역시 2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
는바,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이 상면에는 호각형 2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갑석의 상면은 하층기단과 같이 얕은 경사를 지니고
있으며, 네 모퉁이 역시 하층기단과 동일하게 합각선이 뚜렷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부재로 조성되었다. 각 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다. 옥개석은 이 석탑에서 가장 파손이 심한 부분
인데, 2층 옥개석만은 파손이 덜해 이를 통해 전체적인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매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 4단의 받침과 낙수홈이 마련되어 있다.
낙수면은 완만한 S자형을 그리고 있어 경사가 급하고, 이로 인해 추녀는 전각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받침을
조출해 상층 탑신을 받고 있다. 상륜부는 부연이 있는 노반석 위에 보주를 놓았다.
통도사삼층석탑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전체적인 규모와 양식 등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후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로전에 위치한 약사전은 극락보전과 마주 서 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성곡선사가 세웠다고 하며 그 뒤에 언제 보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8세기 후반에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의 건물이다. 그러나 공포가 건물 4면에 모두 둘러져 있지 않고 앞면과 뒷면에만 있어 특이하다.

내부에는 병을 고친다는 약사여래불상을 모시고 있고 이 불상 뒤에는 약사후불화가 있다.

 

 

 

 

 

 

 영산전의 옆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