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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북전주]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03. 06)

by 柔淡 2010. 3. 11.

양순자 문화 해설사님이 한시간 반동안 한옥마을을 안내해 주시고 경기전앞에서 인사를 하고 가신다.

아마 한옥마을과 경기전을 담당하시는 문화 해설사가 다른 모양이다.

거기서 새로운 남자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아 경기전을 둘러본다. 30분 정도 걸린다는데 그분은 비도 오는데

50분정도 열강을 하신다.

 

사적 제339호의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여 봉안하면서(태조영정 보물 931호)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외3출목, 내3출목이고, 5량 구조의 맞배, 겹처마 지붕이다. 살미의 쇠서가 발달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초각 처리되어

안정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되어있다. 배례청은 이익공을 가진 익공계 양식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배례청의 박공면은 정전의 정면

모습이 된다. 정전과 배례청은 화강암 원형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의 5.8m나 되는 2개의 고주는 종보를 직접 받고 있으며,

양측면의 기둥도 대들보를 받는 고주로 되어 측부재 구조가 간결하고 견고하게 짜여있다. 포작의 내부 살미 조각과 보아지 및 종도리를 받는

파련 대공의 섬세한 조각과 우물천정 단청 등의 의장이 화려한 편으로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권위성을 볼 수 있다.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며 견고하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이 잘 전수된 안정된 구조와 부재의 조형 비례는 건축적 품위를 돋보여준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내신문 내의 신로 및 향로의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의 문화재 가치가 인정된다.

 

 

경기전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이다.
하마비에는“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전에서 보이는 앞산 승암산이 화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 경기전, 경기전은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역사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홍살문. 주로 왕릉이나 관처이었던 곳에 있다.

 

 

 보수공사중이라 장내가 어수선하다.

 

 우측에 세분, 좌측에 세분의 왕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세종, 영조, 고종, 철종 등등이다.

 

 

 

 

 배례청. 신도는 태조의 혼이 왕래하는길이다.

 

 

 

조선왕조의 태조인 이성계(1335∼1408)의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이었다. 고려후기에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 등을 지냈으며,
1392년에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조선왕조를 일으켰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에 의하면 태조어진(太祖御眞)은 모두 25점이나 그려졌는데, 면복본(冕服本) ·정건본(幀巾本) ·익선
관본(翼善冠本) ·곤복본(袞服本) ·황룡포본(黃龍袍本) ·입자본(笠子本) ·마좌본(馬坐本) 등이다.
물론 모두 영전(影殿)이나 진전봉안용(進展奉安用)이다.

이들 태조어진은 문소전(文昭殿) ·선원전(璿源殿) ·집경전(集慶殿) ·경기전(慶基殿) ·영숭전(永崇殿) ·목청전(穆淸殿) ·영희전(永禧殿) ·남별전
(南別殿) 등에 봉안(奉安)되었다.
태조어진 봉안에 참여한 화가를 보면 윤상익(尹商翊) ·조세걸(曺世傑) ·이재관(李在寬) ·조중묵(趙重默) ·조석진(趙錫晉) ·채용신(蔡龍臣) 등이 있다.
현재 전주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는 태조어진은 고종(高宗)9년(1872)에 조중묵(趙重默)이 모사(模寫)한 익선관본이다. 물론 현재 유일의 태조어진이다.

어깨와 앞가슴에 황룡(黃龍)을 수 놓은 청포(靑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정좌한 태조의 모습은 공식적인 어진도상형식(御眞圖像形式)으로 그려졌다.
참고로 현존하는 조선왕조의 어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안의 연대는 모사년대(模寫年代)이다.

태조어진(1872), 모조어진(模祖御眞)(1714 ·1744), 익종어진(翼宗御眞)(1826), 철종어진(哲宗御眞)(1852), 고종어진(高宗御眞)(1891 ·1899 ·1901 ·1909)
등이다.

 

 배례청 좌측에 모셔진 세분의 어진.

 

 독특하게 철종만 무장의 복식으로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