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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북전주]전주의 상징, 풍남문과 전주객사 야경 (03. 06)

by 柔淡 2010. 3. 12.

호텔로 돌아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새벽 네시부터 일어나 출발준비를 하고 전주까지 달려와서 오전내내 걸어 다녔더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세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은 풀리는데 뱃속은 요란하다. 밖을 보니 안개같은 이슬비는 계속내리고 있다.

다시 사진기를 들고 낮에 보지 못했던 풍남문까지 걸어서 갔다.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영조 43년(176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영조 44년(1768)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전주 풍남문은 전주사람들에게는 전주를 대표하는 일종의 상징물이다. 풍남문에는 풍남문이라는 고유의 이름 외에 "명견루"라는 별호가 있다.

풍남문을 중심으로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연결된다.

 

풍남문

 

 호남제1성

 

 풍남문 바로 옆의 전동성당의 야경

 

 다시 한성호텔쪽으로 오다보니 전주객사가 보인다.

 

전주객사는 조선초 전주부성을 창건할 때 같이 지은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성종3년(1473)에 전주 부윤(府尹) 조근(趙瑾)이 전주사고(全州史庫)를

창설할 때 남은 재력으로 객사를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객사는 대청 중앙 북쪽 벽의 감실에 [闕]자가 새겨진 전패(殿牌 - 위패)를 모시고 국왕에

대하여 예(禮)를 행하던 곳이며 조정의 칙사가 오면 이 곳에 유숙하면서 교지(敎旨)를 전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성계 태조의 출생지에 경영된 객사라

해서 고사에서 따 풍패지관이라고 편액했다. 전주객사는 중앙에 주관이 있고 좌우에 동익헌·서익헌이 있고 수직사로 구성되어있다.

 

한고조 유방의 고사에서 따온 풍패지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전주의 번화가인 걷고싶은 거리 가장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