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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충남서산] 겹왕벚꽃이 아름다운 고려시대의 사찰, 상왕산 문수사

by 柔淡 2010. 5. 26.

해미읍성을 돌아보고 30여분을 달려 찾아간 곳은 운산면 서산목장을 지나 태봉리에 있는 문수사란 소박한 절집이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100m조금 너는 길 좌우측에 겹왕벚꽃이 막 절정을 넘어서고

분홍색 꽃비를 흩날리고 있었다.

 

 꽃비가 내린길

 일주문

 

 

  여성회원 한명을 모델로

 겹왕벚나무의 설명은 없어 왕벚나무 설명을 가져왔다.

 

키는 1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는데 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톱니들이 있다. 잎자루 양쪽에 2개의 선점이 있으며
턱잎[托葉]이 2장 달린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4월에 하얀색 또는 연한 분홍색으로 핀다. 꽃잎은 5장이며, 암술대에 털이 있다.
열매는 6~7월경 검은색의 둥근 장과로 익는다. 제주도와 전라남도 대둔산에서 자생하며,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신례리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 제156호로,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제159호로, 전라남도 해남군 산삼면
구림리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제17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나라꽃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다른 벚나무 종류들과 함께 정원·공원에 심고 있다. 양지 바르고 배수가 좋은 곳에서 잘 자라지만 대기 오염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수명은 약 60년 정도이다.

 

 

 문수사의 확실한 창건연대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없지만 1973년에 극락실전 내에 안치된 금동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고려 제29대 충목왕2년(134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한편 발원문 발견시에 생모시, 단수포, 쌀, 보리 등 600여 점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다. 극락보전은 주심포식과 다포식을 절충한 아름다운 건물로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용한 산사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봄철에는 주위의 산과 목장에 벚꽃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문수사는 운산면 상왕산 서편아래 태봉리에 위치한 고사찰로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다. 1973년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극락보전내에

안치된 금동아미타좌불상을 조사 중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한 발원문(發願文)의 명문에 고려 충목왕2년(1346)이란 기록문이 나와 적어도 고려 충

목왕 2년 이전에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극락보전은 사찰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구전(口傳)과 건축양식으로 보아 본래의 건물은 없어지고 금동불상만 따로 간직되어 오던 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뒤 새로 건립하여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보전내에 현존한 탱화의 조성연대를 살펴볼 때 지장보살도는 영조50년(1774)에 조성되었고 신장탱화와 후불탱화는 1892년, 칠성탱화는 1905년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보아 임란 이후에 중건되어 조선후기까지 불화를 계속해서 조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극락보전의 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4칸 겹처마 맛배지붕집이며 공포는 다포건물이다. 측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으며 2개의 고주를 세웠다.
석조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사용했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상부에 창방을 얹고 내외 2출목의 공포를 배치했으며 기둥 사이의

공간포(空間包)는 2개씩이다.
건물 외부공포의 우설 사이에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고 내부는 운궁형을 이루고 있는데 끝부분이 길게 안으로 돌출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치고 있는데 종량 하단에 우물천정을 가설하여 그 위에 가구재를 감추게 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칸에 불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닫집을 가설하였다.
특히 내부의 닫집과 단청문양은 건축당시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건물의 크기는 정면 3칸(10m), 측면3칸(6.6m)이며, 총면적 66㎡이다.

 

 특이하게 석가모니불 안전에 오리인지 기러기인지 매달려있다.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40번지에 위치한 문수사의 극락보전 내에 봉안된 금동여래좌불상으로 앉은 높이 70㎝, 무릎 폭50㎝ 이다.
이 좌불상은 고려 제 29대 충목왕 2년 (1346)에 조성된 단아한 금동불좌상으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보물337호)을 비롯한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가늘고 적정한 눈 오똑한 콧날 미소를 머금은 단정한 입 등 섬세한 표현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균형 잡힌 체구에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손모습 등 신체는 현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신체의 특징 뿐 아니라

적절하게 가해진 옷주름 왼쪽 팔꿈치의 Ω자형 주름과 가슴의 승각기와 띠매듭 등 모든 점에서 장곡사 불상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성연대도 같고 또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같은 조각가의 작품이거나 혹은 동일 유파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1973년 문화재 관리국에서 문수사금동불좌상의 복장 조사에 불상 조성기와 제작연대는 물론 불상 조성에 관련된 300여명의 인물

등이 밝혀졌다. 또한 복장유물로 구역인왕경(舊譯域仁王經)과 의천속장경판기 등이 발견되어 이들은 모두 국문학사, 인쇄발달사,

복식사 등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고려 조각사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문수사 불상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