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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남진도]배롱나무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구름에 둘러싸인 운림산방

by 柔淡 2010. 9. 16.

진도하면 운림산방이 떠오르는데 일가의 기념관이 한고장을 대표하는것도 매우 드문일이다.

 

운림예술촌에서 하룻밤을 자고 맛있는 아침을 먹은후 바로 윗쪽에 있는 운림산방을 찾았다.

작년에 세번정도 진도에 왔는데 진도에 올때마다 운림산방을 찾았고 찾을때마다 늘 그 느낌은 묵직하고 가슴에 깊이 남았다.

물론 첨찰산 아래에 위치한 멋진 풍경도 한몫했지만 한가족이 그림이라는 전문분야를 5대 200년동안 이어왔다는 사실에

놀랍고 경의를 표하고 싶은 것이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처음 세웠던 운림산방을 비롯해서 소치의 생가, 소치이후 5대 200년의 작품을 모아놓은 소치기념관,

사당, 운림사, 그리고 최근 신축한 진도역사관 등이 있는데 이 모든것을 통틀어서 운림산방이라고 한다.

 

그중 먼저 가장 중심이 되는 운림산방을 소개해 본다.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소치 허련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소치 허련이 49세 때부터 8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남종문인화를 대표하는 호남화단의 산실이다.

운림산방운림각(雲林閣) 또는 소허암(小許庵) 이라고도 한다. 허련의 호 소치중국 나라 말기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인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 1269~1358)에서 왔듯이, 운림산방운림 또한 예찬(倪瓚, 1303~1374)의 호 운림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운림산방서울에서 활약하던 허련이 그의 나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 스승인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번지 첨찰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허련에서 시작되어 54년을 이어오던 운림산방은 1911년 아들 허형이 50세 되던 때에 다른 사람에게 팔고 강진으로 이사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허련의 손자인 남농 허건에 의해 다시 사들여져 쇠락한 운림산방이 복원되었고, 진도군에 기증되어 현재는 진도군 소유로 진도군에서 일괄

관리하고 있다.

총면적은 28,740㎥에 연건평 2,579㎥이다. 허련이 기거하던 초가로 된 안채와 사랑채, 기와로 된 그림을 그리던 화실, 그리고 운림지(雲林池)라고

부르는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운림산방에 걸려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 현판은 허련의 방손인 의재 허백련의 글씨이다.

운림산방에는 백일홍, 매화, 동백과 오죽 등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심어져 있다. 허련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백일홍, 백매에 대한 기록이 그의

저술인『몽연록』에 전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운림산방 앞의 연못은 복원되어 한 변 35m 가량 되는 사각형 연못의 중심에는 백일홍을

심은 둥근 섬이 있다.

최근 운림산방 주변에는 허련의 작품과 그의 가법을 이은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소치기념관, 진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진도역사관

건립되고, 연못 등이 보수되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다.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림산방허련의 화실일 뿐만 아니라 소치 허련,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림, 의재 허백련, 그리고 허건의 손자들에 이르는 화맥의 산실이다.

호남을 남종문인화의 고장이라 부르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배롱나무가 심겨진 연못과 운림산방

 

 

 

 

 

 

 

 

 

 

 

 

 

 

 의제 허백련의 글씨. 운림산방

 

 

운림산방에서 위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진도 아리랑비가 있다.

 

 진도라는 지역명이 이미 진도에서 발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진도아리랑을 누가, 언제, 어떤 연유로 만들어 불렀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진도아리랑전라도의 동부지역에서 불리는 산아지타령과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산아지타령은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이다. 그러나 진도아리랑은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이다. 일노래인 산아지타령이 유희요인

진도아리랑으로 개성적 발전을 한 것은 일제강점기 초로 여겨진다. 당시 진도 신청에서 박종기라는 진도의 대표적인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매우 흥겨운 진도아리랑 가락이 시험되었다는 설도 있다.

산아지타령과 진도아리랑은 메기는 소리는 같지만 받는 소리인 후렴이 다르다. 진도아리랑 후렴의 가락은 매우 흥을 돋울 수 있는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이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 또는 전통의 창조적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이다. 진도아리랑전라도 민요의 전통을 살리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전라도 전역으로 금방 전파되었다. 또한 흥겨운 가락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애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우 강한 전승력을 보이고 있다. 진도아리랑은 진도사람들의 예능적 기질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구비전승이며, 역으로 말하자면 진도사람들의

예능적 소질이 바로 진도아리랑과 같은 대표적인 남도민요를 만들어 구비전승을 시켜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첨찰산진도군 에서 가장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어, 진도의 진산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진도에서 이름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쌍계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난대림의 보고 상록수림대가 있고, 쌍계사 바로 옆에 소치 허유운림산방과 기념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한 첨찰산

오르는 길목에 진도아리랑 비가 세워져 있으며, 산 정상에는 진도기상대가 있다. 산 서쪽 아래 의신면 사천리는 다시래기로 유명한 민속마을이며,

이 사천이 흘러서 모이는 사천저수지진도에서 가장 큰 수원지이다. 이처럼 첨찰산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미와 인간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 산 주변에 많은 마을들이 계곡을 중심으로 입지하고 있는 중요한 산이다.

첨찰산을 중심으로 산록에 우거진 상록수림은 현재 천연기념물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상록수림쌍계사를 흐르는 양쪽의 하천을 따라

나타나고, 약 6.2㎢ 넓이로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감탕나무, 정가시나무, 생갈나무, 모세나무, 차나무, 뿔가시나무, 매밀잣밤나무 등의

상록성 잎이 넓은 나무들과 졸참나무, 자귀나무, 갈매나무, 윷놀이나무, 굴피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첨찰산에는 또한 전라남도 유형 문화제 제 121호인 쌍계사 대웅전이 있다. 쌍계사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첨찰산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대웅전은 신라 문성왕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1982년 대웅전의 지붕을 보수할 때 발견된 법당 상량문에 조선 숙종

23년 1632년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첨찰산 기슭에 자리 잡은 남화의 거장 소치 허유의 거처인 운림산방이 있고, 소치기념관이 지어져 있다. 첨찰산으로 오르는 길 옆에 진도아리랑

비석이 세워져 있고, 첨찰산 정상엔 남서부 지역의 기상관측에 매우 중요한 진도 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첨찰산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경관미와 기능을 갖고 있는 산이다.

 

  

2010명량대첩축제가 2010년10월 8일 금요일부터 10월 10일 일요일까지 해남군 우수영관광지와 진도군 녹진관광지 일원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