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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

[춘천]29세로 불운한 생을 마감한 천재작가를 기리는 김유정 문학관

by 柔淡 2011. 2. 4.

소양5교와 3교에서 물안개와 상고대, 일출을 보고나니 시간이 10시반이 되었다.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데이지는 이왕 춘천까지 왔으니 닭갈비를 먹자고 한다.

스마튼폰에서 닭갈비를 검색해 보니 유미닭갈비집이 많이 포스팅 되어 있다.

춘천시내 중심부에 있는 닭갈비 거리에 있는 유미 닭갈비집을 어렵게 찾아 이른 점심을 먹고 그냥 오기가

섭섭해서 춘천에 올때 늘 지나쳐 가기만 햇던 김유정 문학촌에 들렀다가  서울에서 있는 저녁약속 시간에

맞춰 가기로 하고 새로 개통된 전철 남춘천역 근처에 있는 그곳을 찾아 나선다.

 

김유정의 삶 (김유정 기념관 홈페이지 인용. http://www.kimyoujeong.org/)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

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인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 발표를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이듬해인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 작품활동을 벌인다. 왕성한 작품 활동만큼이나 그의

병마도 끊임없이 김유정를 괴롭힌다.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18)를 끝으로 1937년 3월 29일(양력) 그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 <동백꽃>이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

으로 살아있다.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들 그리고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살아있다. 그의 모습 또한 깊이 각인되어 앞으로도 인간의 삶의 형태가 있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김유정 문학관 전경

 

실레마을 전경

 

실레마을

 

 

 

 

 

 

 

 

 

 

 

 

 

 

 

 

 

 복원해 놓은 실레마을

 

 

 

 

김유정 기념 전시관

 

 

 

 

 

 

 

 

 

 

 당대의 명창 박녹주와 작가 박봉자에 대한 짝사랑

 

........저에게 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 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 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미완성 장편소설 '생의 반려' 중에서

김유정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그의 자전적 소설 '생의 반려' 속에 잘 나타난다. 매일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를 닮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김유정의 첫사랑 박녹주이다. 그때부터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2년여 동안 광적인 구애를 했으나, 그의 애절한 마음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대의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가 네 살 연하의 김유정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었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거리에서 한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 낫으면 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럿두 서루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너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동안 썼다....... -소설 '두꺼비' 중에서

그래도 김유정은 끊임없이 "벌거숭이 알몸으로 가시밭에 둥그러저 그님 한 번 보고지고"를 외쳤다. 우리는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속에 실렸던 소설 '두꺼비'를 통해 김유정과 박녹주의 그런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박녹주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김유정은 실의에 빠지게 되고,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이산 저산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고향마을에서 김유정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고향에서도 김유정은 나이 많은 들병이들과 같이 어울리며,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봄봄', '솥',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등 12편의 작품이 고향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박봉자는 시인. 박용철의 동생이다. 잡지 <조광>에 '사랑의 편지'란 공동 제목으로 김유정과 나란히 글이 실린 것이 인연이 되어 김유정으로부터 30여 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답장은 일절 없었다. 차후 김유정과도 알고 지내던 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하여 김유정을 또 한 번 좌절케 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한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김유정의<동백꽃>중에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남쪽 해안에 피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고 불러왔다.
「정선아리랑」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의 올동박이 바로 생강나무 노란 꽃이나 까만 열매를 의미한다.
대중가요「소양강처녀」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이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려는 듯이 ‘노란 동백꽃’이라 표현하고 있다. 당시 강원도의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인데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라고 꽃 냄새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천재 소설가 김유정이 29세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 한국문학에 좀더 멋진 작품을 많이 남겼을텐데 의술이 발달하지 못하고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전혀 없었던 불운한 시대를 살고간 김유정님의 안타까운 한생애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