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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한국불교의 성지 해인사 둘러보기 1 - 일주문부터 해탈문까지

by 柔淡 2011. 9. 27.

앞에서 주차장부터 성철스님 사리탑까지 둘러봤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주문부터 하나씩 둘러볼 차례다.

 

먼저 간단하게 해인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해인사 홈페이지 인용]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화엄십찰

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곹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

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부속암자로서 원당암(願堂庵)을 비롯하여 홍제암(弘濟庵), 용탑선원(龍塔禪院), 삼선암(三仙庵), 약수암(藥水庵),

국일암(國一庵), 지족암(知足庵), 희랑대(希郞臺), 청량사(淸凉寺) 등이 산의 계곡 곳곳에 산재해 있다.

문화재로는 해인사대장경판(海印寺大藏經板, 국보 제32호), 해인사장경판전(海印寺藏經板殿, 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 보물 제128호), 치인리마애불입상(緇仁里磨崖佛立像, 보물 제222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願堂庵多層石塔및石燈, 보물 제518호)등이 남아 있다.

 

1200년이나 지난 사찰이니 곳곳이 유적이며 역사다.

일주문부터 해탈문까지 물리적으로는 300m밖에 안되는거리지만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있다.

 

큰 절에 들어설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이 일주문이다.
절의 어귀에 서있는 제일문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 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일주문은 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문을 지탱하고 있는 건축구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 경치와의 어우러짐이 일품인 까닭에

일주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름이 나 있다.
신라시대에 절을 처음 세울 때부터 일주문은 지금의 자리에 있었겠지만, 조선시대 세조3년 봄에 중수하여

그 뒤로 지금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인 듯하다. 마지막 중건은 1940년에 있었다.

 

 

 

일주문 정면에 있는 현판의 글씨

"가야산 해인사"는 근대 서가의 대가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서 산문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준다.

 

해강 김규진은 이곳 말고도 여러곳의 궁궐과 사찰에 글씨를 남겼는데 서예뿐만 아니라 회회에도 이름이 높았고

190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들여왔고 최초의 상업사진관을 개설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문 뒤쪽의 모습이다. 해동제일도장이라고 쓰여져 있다.

 

 일주문 기둥에 쓰여진 항만세이장금

 역천겁이불고 라는 예서체 글시도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일주문에서 봉황문으로 올라가는길

 좌측에는 이번 대장경축제의 일환으로 해인사 일대에서 펼쳐지는 해인아트프로젝트 안성금 작가의 불상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반으로 쪼개진 불상 사이에 앉으면 나도 부처가 될수 있으려나?

 

 

 오른쪽에는 1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한그루는 해방되던 1945년에 고사했다.

 오른쪽이 고사목

 

 왼쪽나무는 1200년이 지났는데도 일부가지에서 아직 신록을 뽐내고 있다

 

 이제 봉황문에 다다른다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수문장처럼 버티어 서 있는 천년 노목의 가로수를 따라 그 정취에 취해 걷다 보면 두번째 문인 봉황문이 나타난다. 이 봉황문천왕문이라고도 불린다. 큰 절은 으레 천왕문이나 사천왕문 또는 금강문 따위로도 불리는 문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안에는 돌이나 나무 등으로 조각되거나 탱화에 그려진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본디 욕계 육천 가운데 사왕천에 머물면서 천상으로 들어오는 여러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신으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고 불법을 옹호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산문 입구에 봉안하여 수문역과 도량 수호역을 맡게 하였다. 이러한 신중들은 대부분 힌두교의 영향이며, 불교가 대중화하는 가운데 인도의 민간 신앙과 함께 접합될 때 생긴 사상이다

 

 안족에 봉황문이라는 현액이 붙어있다. 

 국사단

 

 어느덧 해탈문에 도착했다.

일주문과 봉황문을 지나면 해인사의 제 3문인 해탈문이 있다. 중문에 속하는 문으로써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 · 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써 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들어설 때 까지 33계단을 거치는데,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한다.

 

해동원종대가람과 해탈문 현액이 보인다.

 

 일주문 입구에는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8만대장경 판전 기념비석과

 당간지주,

 돌확등이 있고

 왼쪽으로는 전통찻집이 보인다.

 다음은 본전인 대웅전 일대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