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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군위]경주 석굴암보다 100년 앞서 조성된 군위 삼존석굴암

by 柔淡 2011. 11. 7.

들국화 숯불촌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음으로 찾은곳은 국보 109호 군위 삼존석굴암.

매스컴이나 역사책에서는 많이 본적이 있지만 실제로 와본것은 처음이다.

가을이라 노란 은행잎이 눈길을 끌고 주차장에서 삼존 석굴암으로 가는길에 있는 소나무숲이

아름다웠으며 다름관광지와 달리 소박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가는 도중 내 어렸을때  어머니처럼 칼국수를 홍두깨로 밀고 계시는 아주머님의 솜씨가 신기해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컷 찍었다.  

 

군위군 관광홈피 소개글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지상에서 20m 높이에 위치하고 굴 입구

높이는 4.25m, 굴 속 길이는 4.3m,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 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입니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부좌한 모습과

깍은 머리, 얼굴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습니다.

당초에 석굴 앞에 절이 있었으나 폐허가 되고 당시의 주춧돌만 남아 있어, 사찰 복원사업으로 1989년

부터  선방, 산신각, 종무소, 법당, 소하천 등을 증개축 하였으며,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합니다.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자락에서 꽃피워지고 신라왕도(王都)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습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삼존석굴이라 합니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佛心)으로만 수도하던 곳으로서, 

8세기 중엽 건립된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삼존석굴암

 

 

 입구의 소나무숲이 멋지다

 

 

 전경

 삼존석불 비로자나 좌불상

이 불상은 작자 미상의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소실되었으며, 9세기경의 불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불상의 형식은 결가부좌에 양 쪽 어깨에 법의(法衣)가 조금 걸쳐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습니다.
손은 비로자나불의 전형적인 지권인(智拳印)을 나타내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를 표시하였으나 목은 짧은 편이다.
얼굴은 풍만한 두 빰과 함께 길게 늘어진 두 귀와 뚜렷한 각부의 모습은 양감(量感)을 느끼게 합니다.
머리는 나발(螺髮)에 육계는 평평한 편이며, 뒷면의 조각은 약하게 조각되었으며, 정면관(正面觀) 위주의 조각 법이 주목된다.

 모전석탑

이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신부는 근래에 다시 축조되어 원형에서 변형되었으나 본래의 탑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탑은 방형의 단층 기단 위에

화강석재를 걸고 얇게 장방형으로 잘라 방형의  단층 탑신부를 조성한 형태이다.
기단은 모서리 기둥과 각면 3개의 안기둥 및 기단덮개돌을 지니고 있으며 1층 탑신부에는 약 20여단의 일정치 않는 장방형 판석을 쌓았습니다.

1층 지붕돌의 층급은 3단이며 지붕돌 상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급을 놓아 점차 체감되게 하였고 다시 그 상부 중앙에 노반 및 보주를 배치하였습니다.

본래 3층탑이었으나 도괴된 것을 1949년에 현 모습대로 복원하였습니다.

 

 

 

 삼성각

 

 영험하다는 약수

 

 

 

 전경

 

 

 

 

 

 

 

 옛방식대로 칼국수를 미는 할머니

 소박한 식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