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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강화]온갖 외세침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려궁지

by 柔淡 2011. 12. 6.

강화도를 3년만에 다시 찾았다.

이전에도 여러번 갔었지만 주로 등산이나 노을을 찍으러 갔었는데 이번에는 고려시대부터

외세의 침입으로 인한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는걸 위주로 목적지를 정하고 집에서

아침 여섯시반에 출발했다. 여덟시반에 도착했는데 고려궁지에 도착해보니 아홉시에

문을 연다. 근처에 있는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였던 용흥궁과 성공회건물을 먼저 돌아보고

아홉시에 고려궁지로 갔다.

 

고려궁지 소개글 (강화관광 홈페이지 인용)

이곳은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줄기차게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터이다. 1232년 6월 고려

고종(재위: 1213 ∼ 1259)은 자주적 정신으로 항몽의 기치를 높이든 고려 무인들의 주장에

따라 지세가 험한 강화도로 천도하여 1234년에 궁궐과 관아 건물을 완성하였다.

1270년 몽고와의 강화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궁궐과 성은 무너졌다.

1637년 병자호란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은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1977년 보수 정화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국민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고려궁지는 지금으로부터 760여년전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쳐하시던 궁궐로 이곳에서 약 39년간(1232~1270) 몽고에 항쟁하였습니다.

강화로 천도해온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뒷산도 송악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궁궐은 몽고와의 화친에 따라

허물었으며 현재 궁지 내에는 강화지역을 다스렸던 유수부가 있습니다. 또한 고려궁지 내에는

외규장각이 있었으며 병인양요때 프랑스군들이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은궤, 지도 등을 약탈해

갔습니다. 고려궁지에는 오래된 역사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켜온 고목들이 많으며 아름다운 꽃나무들로

봄이면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 됩니다.

 

안내문에서 보듯이 고려궁지는 몽고,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고려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모든 외세들이 첫 공격목표로 택했던 강화도의 궁궐과 청사 역활을 했던 곳이다.

항상 외세의 첫 침략목표가 되었으니 강화도에 살았던 선조들의 고난은 어떠했을까?

아픈 역사를 지켜봤던 고목들은 말없이 역사의 현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입구 승평문

 

 

 

 

 안내판을 읽어보면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행궁을 지어 왕들이 피난을 했던 곳이다.

 

 

 

 명위헌 이란 현판은 영조때 명필 백하 윤순이 쓴것이라고 한다.

 

 동헌

 

 

 고려궁지의 아픈 역사를 말없이 지켜본 회화나무. 나이는 약 400년정도 된것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의 역사는 제대로 모격했을것이다.

 종각

 

 

 

 이방청

 

 

 고려궁지에서 강화도 유적지의 입장권을 열개소, 다섯개소로 구분하여 할인된 가격으로 한꺼번에 살수있다.

또한 아래 지도에 있는 음식전에 가면 음식값을 할인받을수도 있으니 이용하는게 도움이 될것 같다. 

고려궁지에는 이외에도 외규장각이라는 중요한 건물이 있는데 그건 다음에 별도로 정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