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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태안]수줍은 사랑의 고백, 2012 태안 튜울립축제 3

by 柔淡 2012. 5. 2.

이왕 튜울립을 소개 했으니 튜울립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tulip의 꽃말은 명성, 애정, 사랑의 고백이고 색깔에 따라 황색- 헛된 사랑, 백색- 실연을 뜻한다. 

 

약 100종(種)이 있으며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 동쪽으로는 일본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이 원산지인데

이중 2/3가 지중해 동부와 러시아 남동부 지역에 집중 분포한다. 튤립은 정원에서 가장 흔히 기르는 식물

중 하나이다.

투르크 주재 빈 대사인 O. 데 부즈베크가 튤립을 서반구로 도입했는데, 그는 〈투르크 에디르네의 식물 관찰〉

(1551)을 썼으며 후에 일부 씨앗을 오스트리아로 보내기도 했다. 1562년 튤립을 실은 화물이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안트웨르펜에 도착하면서 유럽에서 튤립 원예산업이 두드러지게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에서 1633~37년 튤립에 대한 투기 열풍이 불었는데, 지금은 튤립 열풍 으로 알려진 이 상황으로 당시

유럽 경제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색인 : 튤립 열풍)

 

잎은 두껍고 푸르스름한 녹색이며 2장 또는 3장이 식물체 아래쪽에서 뭉쳐난다. 종(鐘) 모양의 꽃은 1송이씩

피는데, 꽃잎 3장과 꽃받침잎 3장으로 되어 있다. 수술은 6개로 서로 떨어져 있으며, 3개의 방으로 된 씨방의

끝에는 암술대가 없는 3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가 있다. 다수의 원예용 튤립은 비늘줄기로만 번식한다.

꽃은 푸른색을 제외한 다양한 색을 띠는데, 순백색에서 노란색과 붉은색 계통의 모든 색깔, 그리고 갈색과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약 4,000가지의 원예품종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꽃피는

시기, 꽃의 유형, 식물체의 크기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몇몇 계통으로 분류된다. 조생종에는 홑꽃종과 겹꽃종이

있으며, 중생종으로는 멘델 튤립과 다윈 튤립이 있다. 만생종이 가장 큰 무리로 생장습성과 꽃색이 매우 다양한데

다윈 튤립, 잡종형 튤립, 코티지 튤립, 백합형 튤립, 겹꽃 만생종, 패롯 튤립 등이 있다.

보통 색이 고른 튤립은 '단일색종'(self-colored), 줄무늬가 있는 튤립은 '줄무늬종'(broken)이라 부른다. 무해한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튤립이 감염되면 색깔을 띤 줄무늬가 생기는데, 이때 환상(環狀)의 형태로 단일색이 사라지고

흰색 또는 노란색 바탕에 불규칙한 모양의 줄무늬가 생긴다.

모든 비옥한 토양에서 번성하지만 물이 잘 빠지는 기름진 토양에서 가장 잘 자란다. 보통 가을에 비늘줄기를 퇴비가

풍부한 땅속에 10~20㎝ 깊이로 심는다. 꽃은 수년 동안 계속해서 해마다 핀다. 재배할 경우, 꽃이 더이상 피지 않고

잎도 노란색으로 변하면, 비늘줄기를 꺼내어 다음해 가을에 다시 심을 때까지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저장한다.

일반적으로 튤립은 다른 식물과는 달리 별로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한국에는 1912~26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뒤에도 많은 품종들이 들어와 정원에 심거나 꽃꽂이 또는

꽃다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튜울립 투기열풍

1550년 직후 튤립이 투르크에서 유럽으로 소개되었는데, 우아한 모양과 선명한 색깔로 값에 관계없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색깔이 다른 여러 가지 변종의 튤립에 대한 수요가 곧 공급을 초과했고, 북부 유럽에서는 희귀한 종류의

개별 구근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1610년경에는 새로운 변종의 튤립 1뿌리가 신부의 지참금으로 받아들여졌고, 프랑스에서는 성업중인 양조장이 변종인

 '튈리프 브라스리' 1뿌리와 맞바꾸어졌다. 이 열광은 네덜란드에서는 1633~37년 절정을 이루었다.

1633년 이전의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매매가 직업적인 재배가와 전문가들에게 국한되어 이루어졌으나 가격이 꾸준히

오르자 평범한 중산층이나 가난한 가구들이 튤립 시장에서 투기하게 되었다. 구근을 사서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기

위해 집과 토지, 그리고 공장들을 저당잡혔다. 판매와 전매는 구근이 수확되기도 전에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귀한 변종

들은 1뿌리에 수백 달러 상당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인가 하는 의심이 제기된 1637년초에 파국이 도래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튤립의 가격구조가

붕괴되면서 네덜란드의 많은 평범한 가정이 재산을 날리고 파산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튜울립꽃에 그런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

예나 지금이나 한번 투기열풍이 일어나면 누군가는 망해야 진정이 되는것 같다.

 

 

 

 

 

 

 

 

 

 

 

 

 

 

 

 

 

 

 

 

 

 

 

 

 

 

 

 

 

 

 

 

 

 

 

 

 

안면도 가는 주도로에서 신온리 튜울립축제장 까지는 10분정도 걸리는데 마을의 소로를 개량한 길이라서 좁고 매우 구불거린다.

이왕가려면 아침 일찍 가서 돌아보고 점심을 먹기전에 빠져나와 안면도나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을 둘러보고 오는게 교통체증도

피하고 여러가지로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