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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논산]백의정승 명재 윤증 고택의 아름다운 새벽풍경

by 柔淡 2012. 5. 21.

5. 19~20일, 1박2일 동안 논산 노성의 명재 윤증고택의 한옥에 머무르면서 고택을 관리하시는 종손

윤완식시의 이야기도 듣고 한옥체험, 종가집 음식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과 기호유학에 대해 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먼저 고택의 아름다운 아침풍경부터 소개하면서 논산에서의 1박2일을

정리하려고 한다.

 

명재 윤증은 기호유학의 대 학자이자 소론의 영수로 일컬어지는 분으로 평생동안 열여덟번이나

관직에 나오라는 부름을 받고도 끝까지 응하지 않았으나 우의정까지 제수된 대학자시다.

생전에 논산 노성의유봉이라는 산기슭아래 초가를 짓고 원체 검소, 청빈하게 살아오셔는데 이런 선생을

위해 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지금의 명재윤증고택을 지어드렸으나 생전에 이집에

기거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대학자 명재 윤증의 생애나 고택의 자세한 부분은 나중에 하나씩 자세하게 정리하기로 하고

먼저 고택의 풍경을 소개한다. 그런데 내가 짧은 지식으로 중구난방 소개하는것 보다는

명재고택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봉력교수의 글을 인용하는것이 더 정확할것 같다.

 

윤증선생 고택은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노성산의 남쪽 자락에 자리잡았다. 선생이 생활하던 원래의

살림집은 인근 병사마을, 유봉이라 불리던 곳에 있었다. 1681년까지도 유봉에 살았다고 하며 윤증선생의

말년인 1709년에 교촌리 현재의 집과 월명동의 종가와 함께 지어졌다.

고택의 서쪽에 인접하여 '노성향교'가 자리잡고 있고, 동쪽 능선을 넘어 공자의 영당인 '노성궐리사'가 자리

잡았다. 뒤의 노성산 정상부에는 백제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노성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택 앞 남쪽 작은 언덕이 안산을 이루며, 안산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어, 외부로부터

집 전체가 노출되는 것을 살짝 가려주고 있다. 또한 안산에는 윤증 모친의 정려각(호란 때 윤증일가는 강화도로

피신했으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빠져 나오기를 시도했다. 가족 대부분이 청군의

포로로 잡히기도 했고, 모친 공주 이씨는 자결하여 정조를 지켰다.)이 있었으나 터가 좋지 않아서 집안에

우환이 많다고 하여 정려각의 위치를 옮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대부 가옥들이 읍내에서 반나절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독자적인 근거지를 운영했던 것과는 달리,

윤증고택은 노성읍내와 불과 500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만큼 향리의 실질적, 상징적 중심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위치뿐 아니라 주택의 구성도 향리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비록 마을의 제일 끝 깊숙한 곳에 위치했지만, 사랑채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조성했고, 석가산과 우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일절 담장이나 별도의 경계물을 두지 않았고,

꽃나무들로 아늑한 분위기만 조성했다. 네모난 연못은 향교 앞까지 걸쳐 있어서, 이 집에 소속되었다기 보다는 노성면

전체를 위해 제공하려는 의도가 명확하다. 사랑 앞마당은 마을에 개방되어 향교에 오는 참배객들의 공동 광장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담장과 행랑을 둘러 안채만 보호하고 나머지 영역은 과감히 향리에 공개하고 있다.

향리의 지도자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구성이다.

윤증고택의 개방성은 세도가의 강요된 위세가 아니라, 윤증이 평소에 주력했던 향촌민의 교화와 보살핌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카리스마 때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향촌에 공개해도 부끄럽거나 감출 것이 없다는 철저한 예학자적

자신감의 결과일 것이다.

노성산 남족 기슭에 자리잡은 명재윤증고택

 이 고택의 주앙이 되는 사랑채

 

 

 이번 토요일 이 고택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사랑채에서 내려다본 고택의 앞부분

 

 고택분만 아니라 동네전체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 이날도 동네주민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여기서 물을 빼고 있었다.

 

 

 고택 입구의 느티나무

 

 300년 되었다는 배롱나무 

 

 가운데 향나무 아래엔 샘이 있다.

 이 샘물로 명재고택의 300년 묵은 간장을 담는다고 한다.

 

 

 

 

 좌측이 창고 및 주방, 중앙이 안채, 우측이 사랑채다.

 명재고택의 또다른 상징, 장독대. 

 

 사당앞에서 400년된 느티나무로 가는길

 

 사당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정원의 노랑붓꽃

 

 

 

 자주달개비

 

 

이제 장독대와 연못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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