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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논산]300년묵은 간장맛은 어떨까요? - 명재고택 교동전독간장

by 柔淡 2012. 5. 22.

논산 노성의 명재고택을 외모로 상징하는 것이 사랑방 우측에 있는 장독대다.

이 장독대는 워낙 유명해서 각종 맛칼럼니스트들이 맛을 보러 와서 기사를 쓰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기위해 시도때도 없이 몰려든다고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새벽 네시에 종손께 전화를 해 눈이 얼마나 쌓였냐고 묻곤 한다는것.

 

이 장독대에는 명재고택의 후손들이 300여년동안 종가의 맛을 지켜온 간장, 된장이 항아리 마다 그득하다.

그리고 종가의 웬만한 곳은 개방되는데 이 장독대는 밖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거나 볼수는 있지만

함부로 개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번 팸투어에서 윤완식 종손께서 우리들에게 장독대를 개방하고

간장맛을 보게 해주셨다.

 

교동 전독간장은 윤증(尹拯, 1627~1714)의 종가에서 몇 백 년 전부터 전해 오는 장류이다. 교동(校東)이라는

명칭은 노성향교가 고택 옆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붙여졌으며,

전독간장은 항아리(독)째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이다.

 

교동 전독간장은 햇장을 담가 묵은 간장에 부어 되메기 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300년간 한결같은 장맛을 유지하고

있다. 장맛의 기본은 메주로 속이 검붉은 빛깔이 나는 잘 뜬 메주를 사용하고, 소금도 신안과 보령의 염전에 가서

직접 천일염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물은 종가 마당의 우물물을 쓴다.

간장을 담그는 방법은 음력 10월에 콩을 삶아 가로 15㎝, 세로 20㎝ 직사각형으로 메주를 만든다. 마루에 짚을 깔고

메주를 늘어놓아 일주일 정도 말린 뒤 짚으로 동여매 40일 정도 처마 밑에 매달아 둔다. 메주를 내려 마루 한쪽에

짚 한 켜, 메주 한 켜씩 놓고 비닐을 덮는다. 비닐에는 공기구멍을 만들어 습기가 생기지 않게 한다. 한 달 정도 지나면

메주 전체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데, 이를 다시 딱딱해질 정도로 햇볕에 말린다. 말린 메주는 물에 씻지 않고 솔로 닦는다.

장은 새해의 첫째 또는 둘째 갑오(甲午)일에 담는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갑오일은 예부터 귀신도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해서 횡액이 끼지 않는 날로 여겼다.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담고 빈 공간은 메주를 잘게 쪼개 채운다.

그러고 나서 물과 소금을 붓는다. 소금물의 염도는 다른 집들이 보통 물의 15% 안팎으로 맞추나, 교동 전독간장은 물과

소금을 1대 1로 잡는다.

소금을 많이 쓰는 셈이다. 항아리 맨 위에는 다시 웃소금을 5㎝ 두께로 얹고 천을 덧씌운 다음 뚜껑을 덮는다.

보통 집에서는 장은 담근 지 40일이면 간장을 뜨지만, 교동 전독간장은 6개월 정도 지난 추석 무렵에 간장을 뜬다.

항아리를 열어 보면 소금이 새까만 강정처럼 딱딱해져 있다. 이 소금떡은 꺼내 버리고 메주를 한쪽으로 치우면 간장이

술처럼 푹 올라온다. 이것이 햇간장이다. 윤증 종가에서는 간장 담근 뒤에 한지로 여자 버선 모양을 오려 ‘꿀독’이라고

글씨를 써 붙였다. 이는 간장이 꿀처럼 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윤완식 종손의 어머님 되시는 제 11대종부 양창호씨는 지금은 나이가 많으셔서 요양원에 계시는데 시집오셔서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 72년간을  이간장을 만들어 오셨고 17년전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마자 귀향한 종손이 어머님께 간장

만드는법을 전수 받으셨다고 한다.

 

간장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소금인데 몇년전까지는 보령의 소금을 가져다 쓰다가 지금은 신안의 소금을 주로 쓰고

보령것은 조금씩만 쓴다고 한다. 72년동안 간장을 만드신 어머님은 소금을 만져만 보시고도 아신다는데 종손은 아직

그경지에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겸손해 하신지만 자신이 만든 간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시다.   
그다음 중요한게 물인데 물은 종가 앞마당에 있는 우물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물물 바로 뒤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는데

향나무 뿌리가 자연적인 정수기 작용을 해 물맛이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집에서 담가먹는 조선간장은 짠맛이 강한데 이 간장은 진하고 걸죽하지만 전혀 짜지않고 뒷맛이 향기로웠다.

그리고 종가에서 네끼의 음식을 먹었는데 조미료를 전혀 쓰지않고 된장이나 간장만으로  맛을 내니 모든 음식이 양념맛이

강하지 않아 담백하고 조금 싱거운듯 한데 아주 맛갈스러웠다. 

그런데 매년 똑같은 방법으로 된장과 간장을 담가도 그해의 날씨라든가 기온, 습도에 따라 장맛이 달라지기도 하니

그부분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명재고택의 상징 장독대. 주로 배가 불뚝하고 입구가 좁은 전라도식 옹기가 대부분이다.

 다른곳은 다 개방해도 장독대는 절대로 개방을 안한다고 한다.

장독을 함부로 열어보면 상온에 노출되어 장맛이 변하고 잡균이 들어갈수 있다는 것이다.

 

 이틀동안 머물면서 장독대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는데 그중에서 일요일 새벽 동녘이 밝아올때 찍은게 가장 마음에 든다.

 

 

 장독대 뒤쪽과 오른쪽에는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사방에서 사진을 찍을수 있는데 그중 동쪽 느티나무 세그루 사이에서 찍는게 화각이 가장 좋아 보인다.

시그마 10~20 광각렌즈로 찍어야 한화면에 다 들어온다.   

 

 느티나무 세그루가 장독대의 수호신처럼 보인다.

 

 

 

 

 

 좌측이 사랑채, 중앙이 안채, 우측언덕에 있는 건물이 사당이다.

 

 

 서일농장이나 기타 다른곳의 대형 장독대를 여러곳 보았지만 여기처럼 자연스럽게 만든 장독대는 처음본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정면에 있는 건물이 사당이다.

그러니 사당과 느티나무가 장독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채 안채 대문앞에 있는 샘, 향나무 뿌리가 자연적인 정수기 역할을 한다. 

 

 윤완식 종손께서 간장을 뜨고 있다. 

 

 간장이 진하고 약간 걸죽하게 보이는데 의외로 짜지 않고 뒷맛이 향긋하다.

 너도 나도 간장맛을 보고 있다.

 간장독 위에는 조약돌이 몇개씩 놓여져 있는데 종손만이 알수 있는 암호라고 한다.

 

 

이 간장, 된장은 300년된 교동된장&간장으로 장맛닷컴에서 인터넷으로 판매되고 있다.

http://jangmaat.com/goods_list.php?Index=1

명재고택 홈페이지에도 소개는 되어 있는데 판매는 안하는것 같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17년전 아이들 교육때문에 시골로 혼자 내려와 고택을 지키고 간장을 만드는 비법을 어머님께 배우기까지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종손과의 대화 시간에 들은 내용을 다시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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