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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논산]조선시대 최고 양반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 명재고택의 연못

by 柔淡 2012. 5. 23.

명재고택은 큰길에서 400m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야 입구가 보인다.

 

그전에 먼저 보이는 유적이 한곳 있는데 그곳은 명재 윤증의 어머니인 공주이씨의 정려각이다.

정려각은 나중에 따로 소개하기로 하고 정려각을 지나면 수백년된 느티나무 몇그로가 길옆에 서있고

명재고택에 들어가기전 입구 좌측에 큰연못이 하나있다.

길이 60m, 폭 30m 정도 되는데 아무리 대학자의 집이라 해도 개인주택 치고는 꽤큰 연못이다.

연못 오른쪽 구석에는 섬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수령 300년정도 된 배롱나무 두그루가 가지가 무성하다.

일반적으로 우리전통 조경에는 연못에 섬을 만들고 배롱나무나,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天圓地方)사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경복궁의 경회루, 남원의 광한루 등

공적인 건물의 조경뿐만 아니라 담양의 명옥헌 등에서도 이런 연못을 볼수 있다.

 

사대부 집안에서 연못의 의미는 주로 화재 발생시 불을 끄거나 풍수지리상 화재를 예방하는 용도로 사용

했다는데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이자 사상가인 명재 윤증의 고택을 제자들이 지을때 아무 생각 없이

인공연못을 파지는 않았을것 같고 개인주택에 딸린 연못의 크기로는 너무 크다는 느낌이다.

네모난 연못은 향교 앞까지 걸쳐 있어서, 이 집의 화재에만 대비한게 아니라 고택앞 마을 전체를 위해 일부러

크게 팟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연못에 들어오는 물은 사랑채앞의 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다.

즉 농사철에 마을앞 논에 물을 대고 가물때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이 모내기 철인데 마을주민이 자연스럽게 연못에 와서 수문을 틀으니 마을 주만들의 논으로

모내기를 위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내집을 지으면서 마을주민들의 일상적인 삶까지 생각했으니 지독한 노블리스오블리제다.

 

충청도 일대 양반가들이 조선말기 동학군의 거병과 6.25 당시의 난리통에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는데

300년된 명재고택이 거의 온존하게 보전되어 내려올수 있었던 이유도 이렇게 주민들과 함께하고 주민들을

생각하는 가문의 전통때문이었다고 종손은 말하고 있다.

 

 연못 전경

 인공섬과 300년된 배롱나무. 7월말부터 배롱나무 꽃이 피는데 그때가 연못이 가장 아름다울때다.

 연못에 비친풍경

 

 

 노성향교

 

 동쪽으로 해가 막 떠오른다.

 

 

  

 

 

 

 

 

 배롱나무

 

 연못속에 수문 개폐장치가 있다.

 연못아래 마을의 농토가 있고 대부분 이 연못에서 물을 댄다.

 

 

연못외에도 이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종손과의 대화 시간에

들은 얘기는 따로 소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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