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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양평]세미원과 두물머리 사이에 정조대왕의 배다리가?

by 柔淡 2012. 7. 25.

1년에 서너번씩 10년넘게 세미원과 두물머리엘 가는데 세미원이 이렇게 꾸며진지는 5년남짓 된것 같다.

 

그전에는 그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충적토 위에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는데

그위에 건물을 세우고 온실을 만들더니 이상야릇한 조경을 해놨는데 그게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그런 전통의 방식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중국풍의 분위기를 풍기는 조경을 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용이 입에서 물을 뿜는 분수나 도자기를 높게 만들어 물이 흘러내리는 분수, 맷돌처럼 생긴

중국돌로 만들어진 징검다리 등등은 결코 우리 전통양식의 조경이라고 볼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것들을 볼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세미원이나 두물머리에 가는 사람들은 둘중 한곳만 보고 오는것이 아니라 두군데 다 들렸다

오는데 그동안에는 두군데를 연결하는 통로가 없어 다시 차를 몰고 각각의 주차장으로 가야만 두군데를

다 구경할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연결하는 배다리가 거의 공사를 끝내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완공이 되지않아 아직 통행을 할수는 없었지만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있으니 조만간 통행이 가능할것 같다.

 

배다리는 정조대왕이 수원에 모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갈때 지금처럼 다리가 없었던 한강을 건너는

유서깊은 방법이다.

 

그내용을 살펴보면

정조대왕은 재위 13년째인 1789년에 아버지 장헌세자의 원소()를 수원으로 옮긴 뒤로는 능행의 범위가

한강 남쪽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그는 수원도호부 자리에 새 원소를 만들어 현륭원()이라 하고 수원부는 화성()을 새로 쌓아 옮기고,

이곳에 행궁과 장용영 외영을 두었다. 화성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는 한강에 배다리[]를 만들었는데

그 횟수가 10회를 넘었다. 재위 9년에 경강(), 즉 한강의 상인들 소유의 배를 편대하여 각 창()별로

분속시켰는데 14년에 주교사()를 세워 그 배들을 이에 소속시켜 전라도 조세 운송권의 일부를

주면서 행차 때 배다리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런 배다리가 이제 거의 완벽한 모습을 드러내고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연결하는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배다리. 배 62척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연결하면서 새로운 명물이 될것 같다.

 

 

 

 

 

 이 배다리 입구에 문정희 시인의 강물이란 시가 적혀있다.

 이제 세미원 입구부터 한번 돌아보자

 

 

 

 

 

 

 

 

 

 

 항아리 분수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이런 분수와

이런 도자기는 우리 고유의 조경양식은 아닌것 같다.

 

 

 

 

 

 

 

  

 

 이런 시설을 만들때는 조금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