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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파주]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 둘러보기 1 - 화석정

by 柔淡 2012. 8. 15.

오랫만에 특별한 여행계획이 없이 맞은 주말이었다.

느즈막하게 일어나 오후쯤에 관곡지에나 가볼 생각 이었는데 둘재 우진이가 제대한 친구들과 파주에서 군생활하는

친구를 면회가기로 약속을 해서 다른 친구들은 7시반에 서울역에서 만나고 있는데 자기는 이제서야 일어났다고

울상이다. 다른일 같으면 모른척 하겠는데 군생활하는 친구 면회 간다는 것 때문에 파주에 직접 태워다 주기로 하고

느닷없이 파주를 다녀오게 된것이다. 파주 파평면에 있는 부대까지 태워다 주면서 보니 곳곳에 율곡선생 관련

유적지가 산재하고 있다.  우진이를 친구가 근무하는 부대 앞에 내려주고 가가이에 있는 화석정 부터 찾았다.

파평은 파평윤씨들의 본관인걸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이율곡의 유적지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것 같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자주 들러 시를 짓고 명상을 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임진강이 굽어보이는 강가의

벼랑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세종 25년(1443)에 율곡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처음 지었으며, 성종 9년(1478)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율곡의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짓고 1973년 정부의 유적정화사업 때 건물에

색을 다시 칠하고 주위를 정리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

이다. 정자 안에는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화석정은 야사에 율곡선생이 임진왜란이 일어날것을 미리 알고 기둥에 기름칠을 해두어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로

몽진을 할때 캄캄한 야밤에 임진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비까지 내려 사방이 보이지 않아 고심하던 차에 도승지였던

백사 이항복이 이 화석정을 생각해 내고 정자에 불을 질러 무사히 임진강을 건너가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걸 신격화해서 그런 야사가 전해 내려오느 것이리라.

 

 화석정. 임진강을굽어보는 언덕에 날아갈듯이 지어져 있다.

 

 

 

 수령 6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 예전에는 이곳에 밤나무와 느티나무가 많았다고한다.

 

 

 율곡 이이는 어릴 때 부터 화석정에서 자주 놀았는데, 8살 때 이 곳에서 지은 시가 한 수 전해진다. 현재 화석정에도 걸려 있는 ‘팔세부시’라는 시이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처량한 울음소리 저녁구름 속에 그치네

 

 수령 250년의 향나무

 임진강 나루터. 임진왜란때 선조가 실제로 여기를 건너갔다고 한다.

 지금은 위쪽에 다리가 놓여있고 가건너는 민통선 이라서 맘대로 건너가지 못한다.

 

 밤나무가 많아서 율곡리라고 하는데 율곡 이이가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일곱살까지 강릉에서 살다가 

그이후 이곳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때이른 상사화가 주변에 예쁘게 피어있다.

강릉 오죽헌에는 여러번 가봤는데 파주에 있는 율곡의 유적지는 처음 와본다. 이어서 율곡의 또다른 유적지인 자운서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