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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파주]율곡 이이 선생 유적 돌아보기 5 - 자운서원

by 柔淡 2012. 8. 19.

파주의 율곡선생 유적지 중 마지막  자운서원이다.

앞서 소개했던 율곡선생 가족묘와 함게 원래 이자리에 있던 율곡을 모신 서원이었다.

 

율곡 이이(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율곡은 조선 중기 대학자이며 정치가로

성리학의 큰 줄기를 이루던 분으로 『격몽요결』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광해군 7년(1615)에 세운 이 서원은

효종 1년(1650)에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사액서원으로 ‘자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숙종 39년(1713)에 율곡의

뒤를 이은 학자인 김장생(1548∼1631)과 박세채(1632∼1695)를 추가로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

그 뒤 서원 터에서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왔으나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것이다. 대문 격인 자운문을 들어서면 위패를 모신 사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아담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에는 각 칸마다 2짝 여닫이 문을

달았는데 문 앞은 개방된 구조로 널찍하여 제사지내기에 적합하다.

사당 안쪽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8월에

제사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전경

 

 자운문 

 내부

 동쪽의 입지재

 

 서쪽의 수양재

 

 서원과 역사를 같이해 온 고목들

 

 강인당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는 자운서원의 역사를 적은 비로 자운서원의 자운문 밖 우측에 위치해 있다. 이 비는 자운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한편 자운서원의 건립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비의 받침돌은 2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아랫단은 두꺼운 판석 4장으로 짜 맞추어 지대석(地臺石)을 만들고 그 위에 사각의 비좌(碑座)를 놓았는데 복련문(覆蓮紋)이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연주문(蓮珠紋)과 괴운문(怪雲紋)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예서체로 되어있는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이 썼으며 비명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비의 상단에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廟庭碑)』라는 전액(篆額-머리글)이 쓰여져 있으며 비문 끝의 「숭정56년계해(崇禎五十六年癸亥)」라는 연기로 보아 비의 건립연대가 숙종 9년(1683)임을 알 수 있다.


 

 

 사당입구

 문성사

 

 율곡선생 영정

 

 

 관세위

 

 망료위

 

 

율곡 기념관과 마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