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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봉화]500년 묵은 과거시험 답안지가 소장되어 있는 달실마을 충재박물관

by 柔淡 2012. 12. 11.

봉성면 용두식당에서 송이돌솥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봉화여행 첫 행선지로 찾아간 곳은 닭실마을이다.

여름휴가때 하룻밤을 묵었던 곳이라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닭실마을에는 종택을 비롯 볼거리가 많지만

가장 먼저 달실마을에 터를 잡았던 조선 전기의 명신 충재 권벌의 유물과 전적을 소장한 충재박물관에 들렀다.

 

이곳은 원래 유곡(酉谷) 즉 닭실마을 이었는데 발음이 딱딱해서 달실마을로 바꿨다고 하며 충재선생의 불천위

제사때 쓰던 한과를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매스컴에 여러번 나와 한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1380년 충재 권벌(1478~1548)선생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풍수지리에 의하면 금닭이 계란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마을이라고 하여 닭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조선 중종 때 대신(大臣) 충재 권벌

선생의 유적이 있다. 선생은 안동인(安東人)으로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있던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 파직되어 이곳에 와서 농토를 마련하고 14년간 후진을 양성하며 經學(경학)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중종 28년(1533)에 복직되었으나,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고, 그후 전라도 구례, 평안도 삭주로 유배

되었다가 그곳에서 명종3년 (1548)에 71세의 일기로 서거(逝去)하였다. 이곳에는 충재 선생의 유적지인 청암정(靑岩亭)과

석천정(石泉亭), 선생의 종가가 있는 곳으로 아름다운 경관과 빼어난 지형을 자랑하며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경승지로 지적하였다.

충재 권벌 선생의 후손이 500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본터이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은 영남의 4대 길지(吉地)로 손꼽히던 마을터로, 충재 자신이 선택한 땅이다. 4대 길지는 풍산 류씨가 사는

안동 하회마을, 의성 김씨가 사는 안동 내앞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함께 사는 경주 양동마을, 안동 권씨가 사는

봉화 닭실마을을 일컫는다.   

 

이날 해설을 해주신 달실마을 출신이자 충재선생의 후손인 권율씨에 의하면 충재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기전 먼저 안동의

하회마을을 보셨는데 이곳 달실마을이 더 마음에 들어 여기를 택하셨다고 한다. 이곳에서 약 70여명의 과거 합격자를 배출

하고 많은 인재가 태어났는데 일제시대 이마을에서 열한분의 독립운동가가 생기자 일제가 영주와 강릉을 잇는 영동선 열차를

일부러 마을앞으로 지나가게 만들고 마을 뒷산에 쇠말뚝을 박아 정기를 흩어지게 했다고 하며 그 후로 예전보다 인재배출이

조금 못해졌다고 한다.

 

고택 바로 옆에 있는 충재박물관에는 선생이 남기신 유품이나 전적, 일기, 고문서 등 개인박물관으로는 아주 많은 국가지정보물

482점과 고문서 5천여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지난 여름에는 문이 닫혀서 보지 못했던 것을 이번 여행에서 보게된 것이다.

 

 충재박물관 전경

 

 

 경상관찰사 제수

 

 

 보물 근사록

 

 500년이 넘은 과거시험 답안지. 오른쪽은 비표로 응시자의 조부모부터 외척까지 이름을 쓰게 했고 채점시에는 떼어서 무작위로 채점한후

마지막 최종 선발때 참고했다고 한다.

 

 한성판윤에 제수한다는 교지 (지금의 서울시장)

 

 

 

 충재선생 자필일기

 

 

 

 

 

 석천정사 현판 원본

 

 

 

 

 

 

 

 

 

 

 

 

 

 명태조 주원장의 친필

 

 장필진묵.

 

 

 

 

 박물관 옆에는 봉화군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를 대여 받을수도 있다. 한시간에 2~3천원

 이제 바로 옆에 있는 청암정을 둘러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