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실마을을 돌아보고 다음으로 간곳은 의성김씨 집성촌인 해저리다. 일명 바래미 마을이라고도 한다.
봉화는 경상북도에서도 내륙 깊숙히 위치한 산간벽지인데 이상하게도 마을이름이 해저(海底)리다.
해설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런 이름을 갖게 된것은 이마을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의성김씨 100여가구가 사는마을 한가운데 이 우물은 온동네 사람들이 음료수와 생활용수로 썼던 우물인데
해방직후 이 우물 아래에서 바다조개로 이루어진 조개무덤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해저리란 이름이 지어졌다.
해저리마을의 오른쪽 깊숙한 곳에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있는 집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김건수가
살던 집이다. 김건수는 순조 30년(1830)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현감, 부사를 거쳐 우부승지를 지냈다.
사랑채인 명월루는 그가 지었으며 철종 1년(1850)에 수리한 바 있다. 안채는 김건수의 6대조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이곳에 살던 여씨에게 샀다고 전한다.
'ㄷ'자형의 안채와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중문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안채는 남향한 중앙에 대청이 있고,
대청 양쪽에 안방과 상방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원래는 '一'자형 중문간채가 있었으나 없어져 현재는 남쪽이
트인 상태이다. 사랑채는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있다. 안채는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측되며,
안방과 사랑방 뒷쪽에 수납공간을 두고 있는 옛 경북지방의 'ㅁ'자 집 평면배치법과 통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 고택은 3.1 운동 직후에 해저 출신인 심산 김창숙(金昌淑) 선생과 유생들이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독립
청원서를 작성했던 뜻 깊은 장소이다.
바래미마을의 방풍림
마을입구의 독립운동 기념비. 12명의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마을이다.
마을전경
해저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된 우물
옥향고택
만회고택으로 가는길
드디어 만회고택이다.
이마을과 달실마을과는 서로 봉화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고 농담을 하지만 이마을의 시조인 의성김씨가 이웃마을인 달실마을 안동권씨의 사위라서
달실마을이 한수위라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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