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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봉화]우리나라 최고의 길지, 연화봉 아래 연꽃의 꽃술에 자리잡은 청량사

by 柔淡 2012. 12. 17.

입석에서 경사가 밋밋한 산길을 약 1.3km정도 걸으면 제일먼저 산꾼의 집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언뜻언뜻 빽빽한 고목나무들 사이로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와 절집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중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께서 입산수도 한곳이라 의상봉이라 불리며, 이곳을 비롯해

보살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 때인가 소실 등으로 인하여 거의 없어지고 현재 신라시대 대찰의

모습은 없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고,문수보살, 지장보살, 16나한등이 봉안되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연화봉 아래 청량사 

 나무사이로 보이는 청량사 전경

 연화봉

 

 

 산꾼의집. 한겨울이라 문이 닫혀있다.

 

 

 설선당

 

 

 

 

 일소당

 

 

 

 

  

 

 

 

 

청량사의 중심 전각인 유리보전은 조선 후기 건물로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전각은 주심포계와 절충한 조선 후기 건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큰 보 밑에 간주를 세워 후불벽(後佛壁)을 구성해 다른 건물에서 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리보전의 현판(260×60cm)은 고려 후기의 공민왕이 직접 쓴 친필이아고 전한다. 유리보전은 1705년(숙종 31)에 중수한 이후 1974년 내외부를 중수했으며 1989년과 2000년에 보수했다.

 

 

 

 

 

 

 청량사 5층석탑

이중 기단에 탑신(塔身)과 옥개(屋蓋)를 오층으로 올린 석탑이다. 기단부의 우주(隅柱)에는 팔부중(八部衆)을 새겨 수호족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복발(伏鉢), 보륜(寶輪), 수연(水烟), 찰주(擦柱) 등을 순서대로 잘 갖추고 있다. 1990년에 세워졌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가 모셔져 있다. 석탑의 주위에는 석난간을 두르고 있다.

 

1990년에 세워진 탑이지만 그 위치와 바로뒤에 있는 삼각우총으로 인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탑이다.

 

 

 

 

 

 

응진전으로 갓던 일행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 

<응진전>

청량사의 부속 건물로 금탑봉 중간 절벽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내부에는 16나한이 봉안되어 있고 공민왕의 부인이 노국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암자의 앞뒤는 절벽이고 뒤쪽 절벽위에 동풍석이 있으며 요사체 옆의 바위틈에는 감로수가 흘러나온다.

 

 

 응진전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최고의 조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