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광주·전라

[전주]90년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by 柔淡 2013. 4. 25.

경기전 옆문으로 나와 한옥마을을 돌아보려면 제일 처음 만나는 곳이 9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혼불" 의 작가인 최명희씨를 기리는 문학관이다.

 

혼불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직후부터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

일보 창간 60주년기념 2000만 원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1부가 당선되었고, 1988년부터 1995년

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한 뒤 1996년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간된 최명희의 작품.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김열규는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

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 최명희는 이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고,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 

 

전주는 작가의 고향이자 문학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전주 풍남동(당시 화원동)에서 태어난 작가는 풍남

초등학교(1960년 졸)와 전주사범학교 병설여자중학교(1963년 졸), 기전여자고등학교(1966년 졸)를 거친 뒤,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 1968년 영생대학(현 전주대학교) 야간부 가정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수료했다.
이 기간 중 작가는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서무직에 종사하기도 했다. 1970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 1972년 졸업과 동시에 기전여고에 교사로 부임하여 서울 보성여고로 옮기기까지 2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혼불』 출간 이후,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12월 11일 몹시도

차고 매운 날, 지병인 난소암으로 영면(永眠), <전주시민의 장>으로 장례 후 모교인 전북대학교 부지 건지산

중턱에 안장됐다.

 

작가를 기리기 위해 작가가 나고 자고 학교를 다녔던 전주에는 최명희 문학관이, 작품의 소재이자 작가의

본관인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작가의 친필과 작가가 쓰던 만년필

 입구

 

  • ㆍ독락재 : 옛 선비들은 신독(愼獨) 너머, 독락(獨樂)의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추구했다.
  • 홀로 자신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서 이룩한 문학의 높은 정신을 우리는 최명희 선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여기를 찾는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경지를 누리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당호를 정했다.

     

     

     

     

     

     

     

     친구인 방송작가 이금림씨에게 보낸 엽서

     

     

     

     

     

     

     

     

     

     

     

     

     

     

     

     문학관 후문 앞 골목끝에 작가의 생가가 있다.

     저 파란대문집이다.

    52세에 돌아가시지 않앗다면 지금쯤 더 많은 훌륭한 작품을 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