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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종로]서울 최고의 단풍 - 창덕궁 후원 연경당 일대 2

by 柔淡 2013. 11. 15.

이제 연경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연경당은 이 집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사랑채의 당호이기도 하다. 연경당은 단청을 생략하고 남녀의 공간을 나누어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하였지만, 가묘(家廟)가 없는 점이 일반 사대부집과 다르다.

연경당 앞으로 흐르는 명당수를 건너면 제일 먼저 정문인 장락문(長樂門)이 보인다. 장락문은 장락궁에서 빌려 온 이름으로, 신선처럼 아무

걱정과 근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았다. 현재의 연경당 모습은 [동궐도]에 기록된 창건 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1827년경에 창건한 연경당에는 축화관(祝華觀), 개금재, 운회헌(雲檜軒) 등의 건물이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대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

되는데, 선향재(善香齋)와 농수정(濃繡亭)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선향재는 서재 겸 응접실 역할을 한 건물로 벽돌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선향재는 한 가운데에 넓은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앉혔으며, 지붕 위로 햇볕을 막는 차양을 설치하였다. 선향재가 서향이어서, 오후에

햇볕이 내부로 깊숙이 들어와 책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지혜가 엿보인다.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청나라 군대에 쫓긴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개화파 수뇌들이 고종을 모시고 잠시 연경당으로 피신한 일이 있었다.

연경당은 고종과 순종대에 연회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고종은 연경당의 넓은 앞뜰에서 내외 귀빈들에게 원유회(園遊會)를

베풀었으며, 1908년 순종은 연경당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일본측 주요 인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1917년 창덕궁의 내전인 대조전이 화재를 당했을 때 순종 황제와 순정황후는 잠시 연경당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연경당 입구의 연못

 

 

 

 

 

애련정방향

 

 

 

 

 

 

연경당 입구

 

장락문

 

 

 

 

 

농수정

 

 

 

연경당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