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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포르투갈·스페인·남프랑스

스포남프 065 - 1201 남프랑스,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

by 柔淡 2017. 1. 1.

아를의 시청광장을 지나 고흐가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으로 간다.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화가로, 프로트 즌델트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사망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9~1876년 화상 구필의 조수로 헤이그, 런던, 파리에서 일하고 이어서 영국에서 학교교사,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에서 전도사의 일을 보고, 1880년 화가에 뜻을 두었다. 그때까지 짝사랑에 그친 몇번의 연애를 경험했다. 1885년까지 주로 부친의 재임지인 누넨에서 제작활동을 했다. 당시의 대표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가 특징적이었다. 1886~1888년 파리에서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1888년 봄 아를르에 가서, 이상할 정도로 꼼꼼한 필촉()과 타는 듯한 색채에 의해 반 고흐 특유의 화풍을 전개시킨다. 주작품은 『해바라기』, 『아를르의 침실』, 『의사 가셰의 초상』(모두 오르세미술관) 등이 있다.

1888년 가을, 아를르에서 고갱과의 공동생활중 병의 발작에 의해서 자기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 계속되는 생 레미 시대에도 입퇴원의 생활을 되풀이한다. 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했으나 같은 해 7월 권총으로 자살했다.

병때문인 자기응시가 자화상의 다작과 관련되며, 그것도 불가능한 때에는 자주 밀레나 들라크루아의 모사를 했다. 생전에는 의사 가셰나 시냐크 등,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평가되었다. 동생 테오 및 기타사람에게 보낸 방대한 양의 편지는 서간문학으로서 중요하다.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아를에서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그는 아는 화가들에게 모두 편지를 써보내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런 제안에 응했던 사람은 유일하게 폴 고갱 정도였다. 사실 고갱 입장에서는 이 제안이 나쁠게 없었는데 고흐의 동생인 테오가 생활비를 대주는 식이었기 때문에 늘 돈때문에 시달리던 고갱에게도 공동생활은 나쁘지 않을듯 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성격차이와 그림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이 공동생활은 애당초 실패할 운명이었다. 고흐는 밀레의 영향을 받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것을 좋아한 반면에 고갱은 기억에 의존해서 창의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런 두 사람의 관점 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아를에서 고흐가 친하게 지낸 카페 여주인 지누의 초상화였다. 고흐가 그린 지누의 초상화는 인간 내면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의도였던 반면, 고갱은 지누를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같은 인상으로 그려냈다. 리얼리즘적이었던 고흐는 이런 고갱의 그림 창작 스타일을 왜곡이라고 생각했으나 처음인지라 그냥 넘겨버리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이 결정적으로 폭발한 그림은 바로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였다. 고흐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뚜렷한 눈동자를 보여주지만, 고갱이 그린 고흐는 흐리멍텅한 모습으로 보여졌다. 고흐는 고갱이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거라고 조롱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고흐는 술집에서 고갱과 술을 마시다가 술잔을 집어던지는걸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 고갱이 온지 두달이 약간 지난 1888년 12월 23일,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고갱의 회고에 의하면 고흐가 면도칼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며 나타나서 자신을 찌를듯 해보였지만 노려보기만 하고서는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뒤에 귀를 잘라버린 걸로 보이며 잘라낸 걸 가끔 만나던 사이인 라셸이라는 창녀에게 건네주었고 그걸 보고 기겁한 라셸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간에 통설처럼 왼쪽 귀를 완전히 자른건 아니고 귓불만 잘랐다. 고흐가 귀를 완전히 잘라버린걸로 오해를 받은것은 그의 자화상에서 왼쪽 귀(거울을 보고 그렸으니 오른쪽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여러 기록으로 보면 귓불만 자른 게 분명하다. 테오가 후에 고흐를 방문했을 때 귓불만 잘려서 얼핏 보면 귀를 잘랐던 일이 있었는지 모를정도로 상처가 안보인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2016년 7월 암스테르담 소재 반 고흐 미술관에서 새로 공개한 당시 의료기록을 보면 왼쪽 귀를 귓불만 남기고 다 잘랐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기사

왜 하필이면 귀를 잘랐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고갱의 회고가 맞다면 고갱을 찔러버릴 의도였던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생각을 돌이켜서 자신의 귓불을 잘라버렸는데 정신과적인 분석에 의하면 자신의 신체를 자르라는 명령적인 환청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긴 하다. 또한 고흐가 이 사건을 일으키기 불과 얼마전에 그린 그림인 "아를 투우장의 관중"에서 고흐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투우에서는 소의 귀를 자르는게 승리의 표상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고흐가 어쩌면 고갱의 압박이라는 것을 벗어나려는 차원에서 고갱을 찌르려다 생각을 돌이켜서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그것으로 고갱의 압박에서 벗어나 승리했다는 상징이 아니었을것이라는 추측이다.

테오의 결혼에 충격을 받아 귀를 잘랐다는 설이 나왔다.#

아를 시절, 뜨거운 햇볕 아래서 모자도 안 쓰고 그림을 그리던 게 정신병 원인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압생트를 많이 들이켜마시며 스스로 망가진 것도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90년대에 나온 국내 위인전에서는 주로 고갱이 그린 고흐의 그림과 연결시켜서 '내 귀는 이렇게 안 생겼어!' 라고 주장하려는 목적으로 귀를 잘라서 그림과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주려고 했다는 설이 자주 보였다.

2009년 고흐의 귀는 사실 폴 고갱이 펜싱검으로 잘라냈다는 주장이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 보도되었고, 2011년 TV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내용이 방영되었다. 독일 역사가 Hans Kaufmann과 Rita Wildegans는 2009년 책 "Pakt des Schweigens"(침묵의 협정) 출간 및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의 증언들과 당사자들의 친구, 가족에게 쓰인 편지들을 분석하여 판단한 결과, 당일 밤 어두운 조명 아래서 논쟁이 격렬해지며 고갱이 본의 아니게 무기로 고흐를 다치게 하였고, 고흐는 고갱이 처벌받지 않기를 원하는 우정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1차적으로 아를 시립병원에 입원한 고흐는 이듬해인 1889년 1월 7일에 퇴원했다. 아를 시립병원의 의사 레이는 고흐의 예술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퇴원하고 싶다는 고흐의 열망을 받아들여주었다. 그러나 고흐는 물감이나 석유를 먹으려 드는 발작 증세를 보였고 결국 아를 시민들이 고흐를 강제로 입원시키라고 민원을 넣을 정도였다. 결국 2월에 고흐는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레이는 낮에는 집에가서 그림을 그리고 밤에 병원에 돌아오게 하는 식으로 안정을 취하게 해주었다.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한 아를 사람들이 강제 입원 시키라고 청원한것에 고흐는 불만을 터트렸고 아를 시립병원에도 불만을 가진 고흐는 테오에게 다른 정신병원에 가고 싶다고 부탁했다. 결국 테오는 형이 지내면서 그림을 그릴만한 정신병원을 알아보았고 생레미의 생폴 요양원을 추천받아 1889년 5월 8일, 고흐는 아를을 떠나 생레미로 가게 되었다.

아를에서 고흐와 그나마 친하게 지낸 건 룰랭 집배원 가족 정도였다. 룰랭 가족이 이후 마르세유로 옮겨가면서 연락이 뜸해졌지만 고흐는 이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고흐의 작품 "밤의 테라스"의 실제 모델인 반고흐 카페 

고흐가 정신병으로 입원했던 아를 시립병원




고흐의 작품 "아를병원의 안뜰"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정원을 그대로 재현했다.



지금은 사진 수업이 한창이다.


아를병원의 안뜰



아를 구시가지 곳곳에 있는 표지




고흐의 작 "밤의 테라스" 실제 모델이된 건물




노벨 문학상을 탄 프랑스 작가의 동상



카페에서 커피한잔 행 하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카페가 휴업하는 날이다.

이제 마르세이유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