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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경주 안압지 야경 (08. 12. 26)

by 柔淡 2008. 12. 29.

해마다 연말연시면 동해안을 찾곤했는데 1월 1일 해맞이를 하고 돌아오는길은 운전하느라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올해는 12월 마지막주에 경주를 들러서 동해안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 경주로 출발했다.

행선지는 경주, 영덕, 울진 등 서울로부터 너무 멀어 평소에 가보기 어려운 곳이다.

 

금요일 오후 세시에 수지 집에서 출발, 여주휴게소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19시30분 경주에 도착했다. 평소 안압지 야경을 찍어보고 싶어 바로 안압지에 갔는데 밤 10시까지 개장을 하고

폐장 30분전인 아홉시 반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안압지 정보

 

개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문무왕 14)에 '궁내(宮內)에 못을 파고 산(山)을 만들고 화초(花草)를 심고 진기 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안압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못의 이름에 관해서는 초기에 간행(刊行)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과 <동경잡기(東京雜記)>등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안압지란 이름은 조선시대 초기에 와서 폐허(廢墟)가 되어버린 신라의 옛 터전에 화려했던

궁궐은 간 곳이 없고 쓸쓸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못 위에 안압(雁鴨)들만 노닐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문무왕 19년에는 못 서편에 동궁(東宮)이 건립되었다는데, 임해전(臨海殿)은 아마도 정전 (正殿)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안압지는 동궁에 속해 있던

못인 것이다. 이 곳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못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었던 곳 이기도 하다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

현재의 모습은 1975년부터 2년간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로 얻어진 자료를 토대로 정비한 것이다. 이 곳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5년 3월부터

1976년 12월말까지 2년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못의 둘레는 호암석(護岩石)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는데 서암(西岩)과 남암 (南岩)은 직선으로,

북암(北岩)과 동암(東岩)은 곡선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못 안에는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있었고, 물은 동쪽 북천의 지류(支流)에서 끌어온 것 같으며,

넓이와 높이가 약 40㎝정도의 화강암으로 된 수로를 통하여 들어온 물은 2개의 큰 석조를 거쳐서 못에는 폭포와 같이 낙하하도록 만들어졌다.
출수구(出水口)는 북암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었는데 마개가 있어서 수위(水位)를 조절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목관(木管)을 통해서 빠져나간 물은

당시의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못 주변에서 회랑지(廻廊址)를 포함하여 26개소의 크기가 다른 건물 터가 확인되어 그 중 서쪽 못가의 5개 건물 중

3개만 신라시대의 건물로 추정하여 복원했다.
초석(礎石)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을 그대로 모조하여 회랑지를 제외한 건물 터에만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안압지와 임해전 등 부속건물을 추정하여

50분의 1로 축소한 모형도를 만들어 원래의 임해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원지(苑池)는 동서길이 약 190평방미터의 평면 속에 15,658㎡의 못을 조성하였다. 못가의 호(湖)안은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동쪽과 북쪽 호안은 절묘한

굴곡의 곡선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쪽과 남쪽 호안은 건물을 배치하고 직선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다. 서쪽 호안은 몇 번 직각으로 꺾기도 하고 못 속에

돌출시키기도 하였다. 못 속에는 삼신도(三神島)인 방장도, 봉래도, 영주도가 배치되었다.
남쪽 섬은 1,090㎡, 중앙섬은 66㎡, 북쪽섬은 495㎡ . 못 호안 주변과 섬에는 괴석을 가득히 배치하였다. 못의 호안 높이는 동, 북, 남이 210㎝ 정도이고,

서쪽의 궁전 건물이 있는 호안은 540cm이다. 이는 못가의 누각에 앉아 원(苑)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도 동양인은 원림(苑林)을

한 곳에 앉아 바라보는 습성을 보여 준다.
연꽃잎이 부분적으로 서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못 바닥에 강회와 바다 조약돌을 옮겨와 깔아서 물이 맑았던 것이며, 못 가운데쯤 '井'형 목조물

(길이 134cm, 높이 101cm 정방형)을 못 바닥에 박아서 그 곳에 연(蓮)을 심어 연뿌리가 번져 나가지 못하게 만든 시설 때문이다.
못 물의 깊이는 약 18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못을 바다로 상징하여 넓게 보이고자 한 것인데, 연꽃이 가득하면 답답하고 좁게 보이기 때문에

못 바닥에 수초가 나지 못하게 강회나 자갈돌을 깔았던 것이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 가의 5개 건물 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제 1, 3, 5 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 유물을 본따 신라시대의 원형대로 추정하여 재현한 것이다.

 

 

저녁 일곱시반부터 여덟시반가지 한시간 정도 다양한 세팅으로 촬영했다.

추운 날씨인데도 의외로 관광객이 많았다.

 

 

 

 

 

 

 

 

 

 

 

 

 

 

 

 

 

 

 

 

 

 

 

 

 

 

 

 

 

 

 

 

 

 

 
데이지는 추위에 한시간 정도 떨고나니 빨리 숙소로 가고싶다고 한다.

경주에서 추령터널 - 문무대왕릉을 지나 양남에 있는 회사 수련원에 도착하니 아홉시 반이다.

내일 아침 감포에 있는 문무대왕릉 일출을 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