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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정조의 효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은 수원화성1 (09. 10. 04)

by 柔淡 2009. 10. 7.

추석연휴 마지막날, 오전은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어머니를 의왕으로 모셔다 드리고 수원화성으로 차를 몰았다.

창룡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연무대, 창룡문, 장안문 일대를 둘러 보았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생활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한 축성법, 현안ㆍ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룡문 (화성 홈피에서 가져 왔는데 설명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

창룡문[편액은 판부사 유언호(兪彦鎬)가 썼다]은 성의 동문이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유좌(酉坐) 묘향(卯向)이다.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 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홍예의 덮개판 위는 3물로 하였고 두께는 3촌이며, 거기에다 안팎으로 장대 각 2층 홈통 각 2개를 더하였다. 안 쪽은 평평한 여장으로 너비는 51척 높이가

4척 7촌 두께가 2척 1촌이다. 외면은 여장의 너비와 높이 두께는 모두 내면과 같다.

타구(口)는 6개[첩은 5개], 방안 총혈은 6개 [각각 사방 8촌 가운데 1첩은 구멍이 2개], 좌우의 여장은 각각 너비가 23척 높이가 5척 6촌 가운데에 작은

널판지 문을 설치하였는데 높이 6척 너비 5척 5촌이다.
장(墻)내에는 6간의 누를 세웠다[안팎 3포(三包)에 2익공(翼工)]. 정면의 간(間)은 너비가 16척 5촌인데 밑에 널판지를 깔았다[높이 1척]. 좌우의 협간은

각각 너비가 8척 5촌 모두 세로 2간이며 전체 길이는 16척이고 기둥의 높이는 7척 5촌이며 단확은 3토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회를 발랐으며 수문청은

3간으로 문안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동쪽 옹성의 제도는 고제에서 한 쪽만을 연다는 뜻을 취하여 옹성을 쌓았다. 성문의 왼쪽에 이르러서는 원성과 연결되지 않고 외문을 설치하지 않아서 경성의

흥인문 옹성의 제도와 같게 하였다. 옹의 형태는 문의 오른쪽 6보 3척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의 왼쪽 6 보 3 척 되는곳 에서 끝난다. 성과 이어지지 않는

곳은 그 사이가 4보 1척이다.
옹의 높이는 9척 6촌이고 내 면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7척이고 정문과 거리는 28척이다. 외면은 벽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1척이고 아래 두께는 11척 5촌

이며 위의 두께는 줄어서 10척 5촌이다. 내면은 벽돌로 된 누조[각각 직경 5촌] 4개를 설치하였다. 평평한 여장으로 둘렀는데 높이는 3척 두께는 2척 5촌이다.

바깥 면은 현안[각각 길이 8척 5촌 직경 1척] 셋을 뚫었다. 여장 4첩을 설치하였는데 높이는 4척 5촌이고 원총안과 근총안[매 첩마다 3개의 구멍 또 북쪽 끝

가로 첩에는 2개의 구멍] 14기를 뚫었다.
옹성 위에는 회다짐을 하고[3물을 혼합하여], 그 남쪽 끝에는 돌 층계를 설치하여 위로 원성과 통하게 하였다.

 

 우측이 동북공심돈

 동장대(연무대)

 

  

 활터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바깥 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하였다. 위 구멍은 26개, 아래 구멍은 14개[사방 각각 1척]이다. 위 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아래 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에 이르게 되어 있다. 그 규모는 기둥 6개를 세웠는데 길이 12척이고 너비

10척이며,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다.

평평한 여장을 둘렀는데 높이 5척, 위 아래에 포혈 23개와 누혈 6개를 뚫어 놓았다. 아래 층 안 쪽에는 벽돌로 만든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또 문 동쪽으로 공심을 막아서 온돌 한 간을 지어 놓았는데 방안(方眼)을 창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하였다.

 

 동장대(연무대)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다.

치(雉) 위에 벽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는데, 대 아래의 석축 높이 13척, 대의 높이 18척이다. 벽돌로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인다. 안쪽 너비 17척 4촌, 바깥쪽 너비 19척, 성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다.

3면에 각각 1타씩이고, 바깥 쪽 2모퉁이에는 둥근 타구를 굽게 접히게 설치하였는데, 모두 방안(方眼) 3구멍을 뚫어 놓았으며, 타구마다 좌우에

凸모양의 여장을 끼고 있다.

안쪽 두 모퉁이는 평여장으로 굽게 접었는데, 모두 높이 6척 5촌, 가운데에 벽돌 계단을 돌계단과 이어지게 하였고 대 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다.

담장 안의 남북의 너비는 14척, 동서 길이는 벽돌 계단까지 11척이다

 창룡문

 

 

 

 동암문은 동장대 서쪽 166보 되는 곳에 있다. 동쪽에 자리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이다. 문 위는 벽돌을 깔았고 누는 세우지 않았다.

다만 오성지와 한 개의 큰 둥근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마치 나무로 만든 전붕(戰棚)의 제도와 같다. 좌우는 각각 비예를 갖추었고 안쪽은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였다. 나머지는 남암문과 같다.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두(龍頭)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하였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이다.
치성이 성 밖으로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7영(七楹) 3간이고, 높이는 여장 위로 6척 8촌이 솟았는데, 전체 높이는 13척이다.
여장의 3면은 모두 벽돌을 사용하였고, 여장 안은 벽등()을 이중으로 쌓았는데, 아래 위에 네모난 총안 구멍 19개[사방 각 9촌], 누혈(漏穴) 11개[사방

각 4촌]을 뚫어 놓았다.
누의 위 4면에는 판문을 설치하고 외면과 좌우에는 사안(射眼)을 내어 놓았다. 내면에 벽돌 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내리게 하였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매년 10월 수원 화성문화제가 열리는데 올해가 46회째로 10월7일부터 12일까지 수원 화성일대에서 열린다. 

 

 

행사명 제46회 수원시민의날 수원화성문화제
일 시 2009. 10. 7 ~ 10. 12
장 소 화성행궁, 화성행궁 광장, 연무대, 장안공원 등 시가지 일원
주 최 수 원 시
주 관 수원문화원, 수원 예총, 수원화성문화재단, 수원화성운영재단 등

전야제 : 경축타종, 불꽃축제 등
개막 축하공연 : 식전행사, 의식행사 및 축하 공연, 폐막공연 등
재연행사 : 정조대왕 능행차연시 및 시민퍼레이드, 장헌(사도)세자 · 혜빈홍씨 가례의식, 혜경궁 홍씨 진찬연, 정조대왕
                  친림 과거시험, 야간군사훈련, 장용영 수위의식, 화성 깃발전
체험행사 : 화성 축성 체험, 궁중 문화 체험
참여행사 : 화성글짓기, 화성그리기, 서예휘호대회, 팔달문 지역 시장거리 축제,
                  2009 음식문화축제,국제 자매도시 공연축제,해피수원 시민가요제,
                  한복맵시 선발대회, 해피수원 대학가요제 등
※ 주 최 : 수원화성문화제 집행위원회
※ 문 의 : 수원시청 문화관광과 관광산업팀(031-228-2621~4)

 

올해는 시간이 안되어 가기 어렵다. 참고로 작년 화성문화제 사진을 링크한다.

 화성문화제 - 화성행궁 (08. 10. 11)  http://blog.daum.net/j68021/13649905,

화성문화제 - 시민행복축제 (08. 10. 11)  http://blog.daum.net/j68021/13649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