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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징검다리 1박2일 고향방문 이벤트] 4 - 제천 송학면 무도리 (09. 12. 20)

by 柔淡 2009. 12. 23.

고향방문 둘째날, 어제 하룻밤을 묵은 청풍 레이크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때 6년을 살았던

송학면 무도리로 갔다. 당시 아버님은 시골의 조그마한 면소재지의 우체국장으로 근무하시면서 여기저기

전근을 다니셨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충주시 앙성면에서 5년정도 근무하시다가 원래의 고향인 제천으로

오시게 되었고 연세가 있으시니 큰 곳에가서 남의 밑에 있기보다는 면단위의 조그마한 우체국장으로

근무를 자원 하셨던것 같다.

그래서 송학우체국 옆에 있는 관사에 잠깐 살다가 중학교 옆에 집을 하나 지으셔서 그리로 이사를 했다.

우리속담에 "집짓는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린 내기억에도 아버님이 집을 지으면서

많은 고생을 하신게 생각난다. 대목에게 자재비 용도로 선금을 주셨는데 그분이 다른데 써버리고 자재를

구해오지 못해 속썩이던일, 여름 장마철인데 비가와서 진척이 없던일 등등

그때 나도 심부름 한답시고 일꾼들에게 줄 막걸리를 한주전자 받아오면서 거리가 너무 멀어 쉬는곳에서

한두잔씩 먹다가 막상 집에 도착해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놀림감이 되었던 것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성되었고 우리3남매는 각자 방하나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이 동네로 부터 많이 떨어져 있는 중학교옆의 외딴 곳이라서 생활하는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송학 면소재지인 무도리는 제천에서 태백으로 가는 철길을 따라 길게 발달된 마을이다.

여느 시골과 마친가지로 마을 사람들끼리는 누구집에 숫가락이 몇개있는것 까지 서로 다 알고 있었고

같은 또래의 아이들끼리는 남녀구별없이 친구처럼 지내오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다 같이 제천으로 버스통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제천 중,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그때 나에게 참 잘해준 선배 한명이 있어서 내가 육사를 졸업하고도 서울에서 몇번 만났는데

나중에 그형이 사고로 일직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슬퍼 한참동안 망연자실 했던적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육사에 입학하는 바람에 그곳에서 떠나왔고 육사 4학년때 온집안이 안양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더이상 그곳을 찾지않게 되었었다. 더구나 전후방 각지에서 바쁘게 군대생활을 하다보니

더 더욱 그곳을 찾을수 없게 되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고있고 가끔가다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지만

어릴때의 그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는것 같다.     

 

송학 강천산. 강천사란 절이있어 가끔 올랐던 곳이다. 

 송학면 무도리의 골목길

 이 사거리를 주변으로 친구와 선후배네 집들이 다 모여 있었다.

 

 우체국과 관사가 있던 터인데 지금은 폐가가 되었다. 

 친구집이 있던 우체국앞 집터인데 그친구네도 이사를 가고 지금은 밭이 되었다.

 

 

 40년전 아버님이 지으셨던집. 나도 3~4년 정도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너무 이른 아침이라 불쑥 찾아간다는게 실례되는것 같아 먼곳에서 사진만 찍었다.

 송학 중학교. 내동생은 저 학교를 나왔다.

 집뒤의 강천산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강천산 중턱. 그 당시 어른들은 사의 정기를 다 파내서 이젠 송학에서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제천과 영월을 연결하는 도로. 지금은 4천선국도가 외곽으로 뚫려 한적하지만 내가 처음 이사 갔을대는 비포장 도로였다.

봄에 얼음이 녹으면 도로가 스폰지처럼 물렁거려 차가 다니지 못했고 두세시간씩 지각을 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제천으로 매일 오아복 두시간식 6년동안 버스통학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는 신체적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튼튼한 성인인데 그때는 아주 멀게 느껴졌던 거리가

지금은 가깝게 보인다. 나이먹은 탓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거리일까?

지금은 이 마을에 살고있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어 만나서 옛이야기를 나누지 못한것이 매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