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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서울종로]1박2일 이수근이 찾은 1.21소나무가 있는 서울성곽길 창의문코스

by 柔淡 2010. 10. 23.

이코스에 대해 알려면 먼저 1968년에 벌어졌던 1.21사태에 대해 간단한 지식이라도 있어야 한다.

 

1.21사태란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으로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간첩 31명은 1968년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 김정태(金正泰)로부터 청와대 습격의 지시를 받고,

우리 국군의 복장으로 18일 자정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야간을 이용해 20일 10시경 서울시내 세검정 고개의 자하문 초소까지 잠입했다.

초소에서 검문을 받은 그들은 정체가 탄로나자 검문경찰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했으며 지나가던 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많은

시민을 살상했다.

이날 밤 현장을 지휘하던 최규식(崔圭植) 종로경찰서장이 전사하고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5명이 살해되었다.

사건 후 곧바로 출동한 군경합동수색진에 의해 31일까지 28명이 사살되고 김신조(金新朝) 1명을 생포했으나 2명은 도주했다.

이 사건은 북한이 대남적화공작을 위한 유격전활동을 전개하기에 앞서 시도한 탐색행위로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지고 향토예비군 창설의 직접적인 계기가된 아주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때 무장공비들이 이코스를 지나 청와대로 침투를 하려 했기에 40여년간 이곳이 강력하게 통제 되었고 지금도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경비를 하는 이유이다.

 

 백사실 계곡 가는길에 찍어본 창의문코스. 아주 험난한 코스다.

 북악산 정상에서는 시내가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ㅇ수근이 소나무의 총탄자국만 보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사진을 찍어간 1.21사태소나무

 

지금도 총탄자국이 선명하다. 

 

 

 

북악(北岳)·백악(白岳)·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높이 342m. 기반암은 화강암이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서울 북쪽 경복궁의 진산이다. 1395년(태조 5) 시축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정도전이 성저(城底)를 측정한 뒤 천자문의 글자 순서에 따라 97구로 나누고 북악산의 정상에서부터 각 구마다 순서대로 번호를 동쪽으로
붙여 나가면서 97번째 글자인 조(弔)자에서 다시 북악산에 이르도록 했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어 일반인의 등산이 금지되었다가 40년만에 일부구간이 개방되었다.
서쪽 인왕산과의 안부에 자하문(紫霞門)이 있으며, 남동쪽 기슭에 삼청 터널과 삼청공원이 있다.

 북악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비봉, 족두리봉쪽

 이구간에서는 통제가 심하다.

 돌고래 쉼터. 인왕산이 잘 보인다.

 인왕산

 오늘의 목표는 사슴을ㄹ 보는것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가까스로 사슴을 만났다.

 

 

 드디어 창의문에 도착했다. 2시간 20분이 걸렸다. 

 이구간도 자하문 고개때문에 성벽이 끊어져있다.

 창의문

 

창의문(彰義門)은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있는 4개의 소문 중 하나로 그중 서북쪽 문이다. 그 때에는 이 곳은 양주와 북한으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

이 곳은 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396년(태조 5년)에 지어졌으며 1413년(태종 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

창의문과 숙정문이 경복궁의 양 팔과 같아 길을 내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하여 닫혔다. 이곳에는 인조반정때 공신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 창의문은 문루가 없었으나 나중에 세워지게 된다. 창의문은 4소문 중 가장 원 모습을 잘 유지한 문이다.

 

 

 마지막으로 기념촬영. 이사진에 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