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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서울]4대궁궐 단풍의 절정을 보다 - 11. 경복궁 전각들

by 柔淡 2010. 11. 18.

토요일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단풍을 보았으니 일요일은 경복궁과 덕수궁의 단풍을 볼 차례다.

일기예보엔 흐리고 약간의 비가 올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이 맑다.

그래서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광화문에 내려보니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수하기 위해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사진을 몇컷 찍은다음 경복궁으로 갔다.

 

광화문을 보수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가본다. 전에는 광화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좌우측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광화문을 보수하고 부터는 광장에서 바로 길을 건너 광화문을 통해서

들어갈수 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이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

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새로 보수한 광화문이 깔끔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요즈음 매스컴에 보도되는것 처럼 광화문의 현판이 새로만든지 3ㅐ월만에 세로로 금이가버려 말들이 많다.

자연스런 현상이라느니, 금강송을 쓰지 않고 외국의 목재를 사용했다느니, 광복절에 맞춰 급하게 공기를 앞당기느라

제대로 건조를 하지 않아서 라느니.... 뭔가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격이니 뭐니 하는데 소소한것 하나부터 제대로 하면 국격은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이다.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있다. 누각에 수문장들이 올라가 있다.

 

 

 

해태상. 광화문에서 보면 정면으로 보이는 관악산이 불의 기운이 있어 이를 누르기위해 해태상을 설치했다는 풍수지리설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것 같다. 연합뉴스의 관련 기사를 인용한다.

 

이 해태상이 근래 다시금 인구에 회자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사건 때였다.
이 무렵 해태상은 광화문 복원을 위해 경복궁 경내 구석에 잠시 옮겨진 상태였는데 전대미문의 숭례문 방화사건과 그 직후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화재까지 터지자 해태를 다른 곳에 옮겼기 때문에 화마(火魔)가 자꾸만 광화문 일대를 덮친다는 이상한 풍문이 돌기까지 했다.
이런 풍문은 상상의 동물인 해태가 화기(火氣)를 누르는 기운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믿음은 풍수지리학계에서 나온 것으로, 각종 관련 기록을 검토할 때 해태는 화기 진압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법의 공정한

심판을 관장하는 동물로 드러난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 상징물로 해태(해치)를 선정했다. 해태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반대한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서울의 상징은 경복궁이며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고 그 광화문을 지키는 동물이 해태라는 점에 힘입어 서울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광화문 복원이라는 성과에 가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올해 광복절은 해태가 제자리를 찾은 날이기도 하다.

 흥례문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구(御溝)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에도 있으며, 고려궁궐, 중국의 궁궐, 베트남의 궁궐에도

있어 동아시아 지역의 궁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근정문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행사를 하는 곳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경회루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경복궁은 숲이 별로 없고 몇그루의 은행나무만 눈에띈다.

향원정의 단풍이 유명한데 그건 별도로 포스팅하려 한다.

 

 은행나무는 단풍보다는 조금 일찍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떨어뜨리는것 같다.

 

 

 

감나무. 감이 아직 많이 달려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자경전 꽃담

 

자선당과 비현각

 

 이제 향원정의 단풍을 소개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