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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서울]4대궁궐 단풍의 절정을 보다 - 13, 덕수궁 은행나무

by 柔淡 2010. 11. 18.

경복구에서 나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버스를 탓다. 시청역에서 내리니 바로 덕수궁이다.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있는데 단풍구경을 하러 갔으니 수문장 교대식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덕수궁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단돈 천원. 덕수궁안 미술관에서 피카소전을 하는데 그건 만원이

넘는다. 데이지와 함께 왔으면 들어갈껀데 혼자 와서 그냥 패쓰.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

611년(광해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

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

으로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덕수궁엔 원래 단풍남무가 별로 없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이 잔뜩끼어 경치가 별로다.

석조전 뒤쪽으로 약간의 숲이 있으나 가뭄으로 나무에서 말라버렷다.

대신 여긴 은행잎이 노란색으로 물들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는 하늘이 맑아졌는데

 

처음에는 구름이 많이끼어 침침해 보인다.

 

강ㄹ을 즐기러 나온 가족, 연인, 친구들이 많다.

 

 

 

 

 

덕수궁은 은행나무가 예쁘다.

 

 

 

미술관앞 분수

 

미술관

 

석조전. 보수공사중이다.

 

 

 

은행잎의 노란색이 절정이다.

 

 

 

 

니콘

 

 

 

 

 

 

 

 

 

 

 

 

 

 

미술관앞 해시계인데 대충 시간이 맞는것 같다.

 

 

 

 

 

숭례문 화재이후 궁궐 전각의 처마마다 붙여놓은 화재감지기.

우리나라 건축물의 처마곡선이 참 아름다운데 사진 찍을때마다 저게 화면으로 들어온다.

꼭 저 위치에 설치해야만 하나?

 

노란색은 니콘이 더 좋아보인다.

 

 

 

역시 단풍은 역광에서 찍는게 좋다.

 

 

 

이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로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