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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영천]경북지방의 대표적인 사찰, 팔공산 은해사 2

by 柔淡 2011. 4. 21.

백흥암에서 내려와 은해사를 들어갈때 처음 보이는 곳은 보화루다.

보화루는 2층 누각인데 그곳에 걸려있는 보화루란 편액이 추사의 글씨다.

 

추사는 경상감사로 부임한 그 생부 김노경 공을 따라서 경상도 일원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이 은해사 일대도 들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헌종 13년의 대 화재 뒤 헌종 15년에 마무리 지은

불사때 지어진 건물 중에서 대웅전, 보화루, 불광의 삼대 편액이 김정희의 글씨라서 마치

화엄루각과 같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뒤 고종 16년(1879)에 영천군수 이학래가 다시 쓴 '은해사 연혁변'에서는 '문액의 은해사와

불당의 대웅전, 정각의 보화루가 모두 추사 김시랑의 글씨이고 노전을 일로향각이라 했는데

역시 추사의 예서체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그 글씨를 봤을때 그리 잘쓴 글씨라는 생각이 안드는데 추사가 썼다는 해설을 듣고나면 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이유는 뭔지?

 

다음은 범종각이다. 절정을 막지난 벚곷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범종각위에 있는게 보물로 지정된 금고다. 돈넣는 금고가 아니라 쇠로만든 북을 금고라 한다. 

금고는 금고, 범구(梵口), 반자(飯子)로 말해지는 북의 일종으로 쇠북이다. 쇠북은 금속으로 만든 북으로 보통 구리, 은, 금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집결하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 각기 달리 사용된다고 합니다. 즉, 구리, 은, 금 순서에 따라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증가된다고 한다. 세 줄의 큰 원 안에는 화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금고(金鼓)는 징과 같은 모양으로 한 면은 두드리는 면이고 반대 면은 크게 구멍이 뚫려서 안이 동공(洞空)으로 되어있는 형태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에서 사용되어 온 악기로서 기능은 변하지 않았으나, 형태 장식문양의 표현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왔다.

은해사 소장 청동제 금고는 1646년에 제작된 것으로 외견상으로는 동(銅)의 함량이 많아지는 조선후기의 전형적 재질로 되어 있다.

은해사 금고는 고려시대의 금고에 비해 앞면의 문양이 후육(厚肉)하고 도안화(圖案化)된 고려시대의 문양에 비해 회화적인 표현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문양의 표현과 그 배치는 금고의 변화 연구를 고찰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며, 특히 제작연대가 분명하고 문양의 각종 표현이

시대상의 한 면을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활짝 피었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약수물위에 쏟아져 내렸다.

 

다음은 산신각.

동백나무 한송이가 외로이 서있는데 여기는 지금이 절정이다.

 

 

 

 

 

산신각앞에 여느절집에서나 볼수있는 동자승 조각들이 있는데 조금 특이한걸 찾아 보시라.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가 당당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 그런데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이 절집 스님들의 위트와 재치가 느껴진다.

 

우리 토종 하얀민들레, 약이 된다고 하니 요즈음은 야생에서도 보기가 어렵다.

살구나무인지, 자두나무인지?

무스카리는 외래종인데 특이하게 절집에 여러송이 피어났다.

이제 은해사의 다양한 보물들이 있는 성보박물관으로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