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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강화]우리역사의 축소판, 강화의 국방유적 둘러보기 3 - 광성보, 광성돈대

by 柔淡 2011. 12. 10.

용진진에서 게속 남족으로 내려가다 보니 광성보가 나온다.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 세개의 돈대가 있었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해에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미국함대가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광성·초지(草芝)·덕진(德津)·덕포(德浦)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

쳤으나, 4월 23일에 450명의 미국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진을 점령하였다.

이튿날 미군이 북상하여 덕진진을 함락시키고 이어서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이하 전장병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중상으로 기동이 어려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그때의 격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명용사묘로 가는길은 고즈넉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안해루 바로옆에 광성돈대가 있다.

 

 

 

 

 

이제 광성보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로 갈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