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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강화]우리역사의 축소판, 강화의 국방유적 둘러보기 7 - 초지진

by 柔淡 2011. 12. 22.

덕진진을 돌아보고 나니 배가 고프다. 꼭두 새벽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12시가 될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다니면서 먹을것을 별로 찾지않는 나야 괜찮지만 요즈음 다이어트 하느라 힘든

데이지는 죽을 지경이었을것 같다.

 

아이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초지진 조금 못미쳐 퓨젼궁중두부라는 음식점이 나온다.

강화도 동쪽해안에는 수많은 장어구이집들이 있는데 데이지는 장어보다는 두부집이 더 좋겠다고 한다.

아마 장어를 먹으면 내가 낮술을 마실까 염려되는 모양이다. ㅎㅎㅎ

퓨젼궁중두부집에서 두부전골을 맛있게 먹고 초지진으로 향한다.

 

초지진 소개  

사적 제225호로 강화의 동남단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하고 김포시 대명리와 마주 보이는 곳이다.

1656년 진이 설치되고 1679년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이 축조되어 이 진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6문의 포가 설치된 황산포대와 12문의 포가 설치된 진남포대가 있다.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진장으로 1666년에는 병마만호가 있다가 1763년에는 첨사가 있었고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에

배 3척이 배치되어 있었다. 병인·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 근대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시아 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덕진, 광성의 제진을 공략하였다.

1875년 8월 21일 일본군함 운양호가 초지진포대와 격렬한 포격전을 벌여 싸운 병자수호조규의 시효진이다.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 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당시의 격전지인 길상면

초지진의 옛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아 사학자는 물론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초지대교

 건너편이 김포 대명포구다.

 등대는 흰색과 빨간색만 있는줄 알았는데 초록색 등대도 있다.

 

 

 

 

 

 

 

 

 

 

 

 

 

 

초지진은 강화도의 여러 진중에서도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세나라의 공격을 받은 격전지였다.

포탄을 맞은 소나무와 성벽의 그때의 역사를 말없이 웅변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