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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공주]충남의 조선시대부터 근대역사를 정리해 놓은 충남역사박물관 1

by 柔淡 2012. 5. 31.

1층에는 "명재 윤증, 백의로 조선을 경영하다"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니

충청남도의 역사를 조서시대부터 근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 해 놓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관찰사!

 

조선시대 동반(東班: 文官)의 종이품(從二品) 외관직(外官職)으로 감사(監司)라고도 한다. 1413년(태종

 13)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시행되었던 8도(道), 1895년(고종 32)의 23부(府), 그 다음 해인 1896년

(건양 1)의 13도에 있어서의 각도 또는 부(府)의 장관(長官)이다.
정원은 1원으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무관직(武官職)을 거의 겸하고 있었다.

고려 말기에는 안렴사(按廉使)·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라 하였고, 조선 초기에는 안렴사·관찰사·관찰출척사

등의 이름으로 자주 바뀌었으며 관찰사로 굳어진 것은 7대 세조 때부터였다.
중요한 정사에 대해서는 중앙의 명령을 따라 시행하였지만, 자기 관하의 도에 대해서 민정(民政)·군정(軍政)·

재정(財政)·형정(刑政) 등을 통할하고, 관하의 수령(守令)을 지휘 감독하였다. 경찰(警察)·사법(司法)·징세권

(徵稅權)을 행사함으로써 지방행정상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
관찰사의 관아를 관찰부(觀察府) 또는 감영(監營)이라고 하며, 관원으로는 도사(都事: 從五品) 1원, 판관(判官:

從五品) 1원, 중군(中軍: 從二品) 등 중앙에서 임명한 보좌관이 있고, 일반 민정은 감영에 속한 이(吏)·호(戶)·

예(禮)·병(兵)·형(刑)·공(工)의 육방(六房)에서 행하고, 이를 지방민에서 선출된 향리(鄕吏)로서 담당하게 하였다.

지방별로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는 한성(漢城: 서울) 또는 수원(水原)에, 충청관찰사(忠淸觀察使)는 충주(忠州)

또는 공주(公州)에, 경상관찰사(慶尙觀察使)는 경주(慶州)·상주(尙州)·달성(達城: 大丘)·성주(星州)·안동(安東)에,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는 전주(全州)에, 함경관찰사(咸鏡觀察使)는 함흥(咸興)·영흥(永興)에, 평안관찰사(平安

觀察使)는 평양(平壤)에, 황해관찰사(黃海觀察使)는 해주(海州)에, 강원관찰사(江原觀察使)는 원주(原州)에 두었다.


23부(府)의 관찰사는 한성·수원·충주·공주·홍주(洪州)·전주·나주(羅州)·남원(南原)·제주(濟州)·진주(晉州)·동래(東萊)·

대구(大邱)·안동·함흥(咸興)·경성(鏡城)·갑산(甲山)·평양·의주(義州)·강계(江界)·해주·개성(開城)·강릉(江陵)·춘천(春川)에 두었다.

 

그외에도 시아버지가 시집온 며느리에게 재산을 특별하게 나누어준 별급문기 두쪽이 눈에 띄었는데

남존여비의 조선시대에도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은 각별했음을 알수 있다.

 

 관찰사의 행렬

 

 

 

 

 

 

 

 

 

 

 

 

 

 

 

 한석봉의 서찰, 이것도  명재고택의 장손 윤완식씨가 기증한 것이다.

 

 

 

 

 

 

 

 

 

 

 

 

 

 

 

 한자로 송사를 기록한 문서

 

 

 

 별급문기

 

 

 

 

 

 진주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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