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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논산]우리나라에 두개만 남아있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노성궐리사

by 柔淡 2012. 6. 5.

명재고택에서 나와 왼쪽, 즉 동쪽으로 100m쯤 가면 공자의 영정을 모신 궐리사란 건물이 있다.

 

궐리사(闕里祠)는 공자(孔子)가 생장(生長)한 향리(鄕里) 궐리촌(闕里村)에서 유래(由來)한 명칭으로

공자의 영상(影像)을 봉안(奉安)한 영당(影堂)을 말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기와집이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13년(1687) 우암(尤庵) 송시열

(宋時烈) 선생이 궐리사를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그 2년 뒤(1689) 왕세자(경종(景宗)) 책봉(冊封) 반대

상소(上疏)로 사약(賜藥)이 내려져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權尙夏),

김만준(金萬俊), 이건명(李健明), 이이명(李신明), 김창집(金昌集) 등 제자들이 노성산(魯城山) 아래

궐리촌(闕里村)(현 위치의 서쪽)에 궐리사를 건립하고, 이듬해(1717) 공자영정(孔子影幀)을 봉안하였다.
그 후 정조(正祖) 15년(1791)에 송조5현(宋朝五賢)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순조(純祖) 5년(1805) 관찰사

(觀察使) 박윤수(朴崙壽) 등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중건 당시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일명 춘추사(春秋祠)라고도 한다.

궐리사는 강릉(江陵), 제천(堤川), 화성(華城)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다.

 

노성향교와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관리는 하는것 같은데 관리인이 상주하지 않으니 뭔가 어수선하다.

공자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초양귀비꽃이 아주 요염하게 피어 있었다. 

 

 

 

 

 궐리탑

 공자의 동상

 

 

 

 

 

 

 

 

 

 

 

 

 

 

 

 감자꽃은 조금 어울리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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