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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논산]명재고택 종손과의 대화, 윤완식 종손이 들려주는 고택이야기

by 柔淡 2012. 6. 19.

명재고택 지킴이 윤완식 종손은 둘째였으나 뜻하지 않게 17년전 갑자기 종손이 되는 바람에 서울생활을

접고 논산 노성의 고택으로 낙향을 하셨다고 한다.

원래 형님이 계셨으나 딸만 둘을 남기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느닷없이 종손이 되신것이다.

그당시 일곱살이던 윤완식씨의 아들에게 "앞으로 네가 이걸 물려받아 관리해야 된다 " 라고 말하니

아들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답하는걸 듣고 두말없이 종손의 의무를 다하기로 했던것이다.

 

노성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등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닌터라 처음 낙향해서는 농사일도 할수없고

고택의 관리에도 서툴러 너무 외로웠다고 한다. 그 답답함을 어디에도 털어 놓을데가 없어서

저녁만 되면 불빛이 찬란한 논산시내로 나가 한바탕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고 그시절을 회상한다.

 

고택생활에서 가장 어려운점은 사생활이 없다는것, 평소 생활하는 안채까지 불쑥불쑥 밀고 들어오거나

장독뚜겅을 마음대로 열어보고 닫지않고, 아이들이 사랑채에 신발을 신고 뛰어다녀도 말리지 않는 젊은엄마

등등 속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고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 졌지만 아직도 염치없는 관광객들을 보는게

힘들다고 말하신다.

 

조상님들에 대한 일화로는 일제시대 노비제도가 없어질때 증조부께서 집안에 있던 노비문서를 성만 남기고

이름은 아무도 모르게 잘라냈다는것과 서울의 유명한 극장이었던 단성사를 인수하라는 제의 받으시고도

돈을 벌기 시작하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생각으로 거절하신것, 동학혁명때 동학군이 습격했으나 그동안

조상들이 쌓아오고 베풀어오신 덕때문에 대문만 그을리고 고택을 보존할수 있었던것, 6,25전쟁당시

고택이 인민군 중대본부로 쓰이던 고택을 미군들이 폭격하고자 할때 이마을 출신이었던 박기동 조종사가

저집은 절때 폭격하면 안된다라고 만류하여 겨우보존할수 있었던 일 등 다양한 일화를 말슴해 주셨다.

 

그외에도 어릴때 마을주민들과 똑같이 생활해야 한다며 고구마와 감자만 먹어 지금도 고구마, 감자는

싫어한다는 이야기, 간소한 제사음식에 관한 이야기, 일제시대 이전부터 양력을 사용한 이야기,

다양한 제사를 통합해서 세일사로 지내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나 여기에 일일히

다 적을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이 집안의 독특한 절하는법에 대해 알려주고 다함께 절하며 마무리를 하셨다.

 

 

 

 

 윤증 가문의 독특한 절하는법. 머리를 바닥에 닿지 않고 팔을 굽히지 않는다.

 

 

 서로 절하고 끝을 맺었다.

 

그전에 빠트린것 한가지, 전날 저녁에는 이번여행의 주제인 인문학 이야기가 있는 고택체험의 일환으로

"기호유학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건양대 김문준 교수님의 아주 유익한 강의가 있어서  명재 윤증이 연구하고

후학들에게 가르쳤던 기호유학에 대한 이해를 넓힐수가 있었다. 

 

이전에 소개했던 누마루가 쪽문을 닫고 병풍을 치면 이렇게 아늑하게 변한다. 

 

 건양대 김문준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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