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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부여]백제 700년 기구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재현한 백제역사문화관 2

by 柔淡 2012. 7. 11.

앞에서 백제문화단지 건립기념관과 1, 2전시실을 둘러보았는데 이전에는 3, 4전시실이다.

 

3전실에는 백제의 정신시계, 사후세계, 미륵불국토를 이루고자 하는 백제인드르이 염원을 전시해 놓았다.

기원 전후 무렵 백제인들은 땅을 파고 바로 시신을 안치하거나 나무나 돌로 널을 짜는 널무덤(土壙墓)을 사용

하였다. 한성시대의 백제인들은 시신을 두고 그 둘레에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널길이 달린 돌방

위에 흙을 덮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을 사용하였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과 같은 것으로

당시 두 나라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웅진시대가 되면 돌무지무덤은 사라지고 돌방

무덤이 주로 사용되며, 중국의 영향으로 벽돌무덤(塼築墳)이 만들어지기도한다. 사비시대에는 평면의 형태가

장방형인 돌방무덤이 유행한다. 한편 전남지역에서는 독무덤(甕棺墓)이 오랫동안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미륵불국토를 염원하던 백제의 미륵신앙은 크게 미륵보살이 주재하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도솔천

상생신앙과, 말세적인 세상을 구제하러 미륵이 하생하기를 바라는 미륵하생신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제인들의 미륵신앙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은 미륵불이 56억7천만 년 뒤에 나타나 자신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미륵하생신앙에 가까웠다. 미륵신앙은 이 세상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백제인의 염원이며, 미륵불국토는

미륵의 대승설법이 이루어지는 복지사회에의 염원에서 나온 불교적 이상사회관이다.

 

 

 

 

 

 

 

 

 

 

 

 

 

 

 

 

 

 

 

 

 

 

 

 

 

 

 

 

 

 

 

 

 

 

 

 

 

 

 

 

 

 

백제계 석탑은 목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목탑 양식의 석탑으로는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石塔)과 정림사지 오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이 있다. 이들 목탑 양식의 석탑은 백제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목조건축의 세부양식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탑신의 형태는 여러 매의돌을 짜 맞춘 목재가구(木材架構) 형식이다. 기둥 위의 3단 층급(層級) 받침은 공포(栱包)와 같은 효과를 낸 것이고, 옥개석(屋蓋石)이 넓게 퍼져 처마 끝이 살짝 들려 있는 것도 목조건축의 처마와 같다.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원형으로하는 백제계 석탑은 고려시대까지 충청ㆍ호남지방에서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