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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서천]공정여행, 여인들의 눈물과 한으로 짜는 한산모시

by 柔淡 2012. 11. 5.

서천군이라는 말을 알기전 내 뇌리속에 각인된것은 한산이라는 지명과 함께 세모시라는 우리고유의 직물에

관한 기억이다. 즉 한산세모시가 더 유명했던 것이다.

서천에 갈때마다 한산모시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모시짜는 광경을 직접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산모시 정보관, 전시관, 홍보관 등 세건물에 모시에 관한 모든것이 전시,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홍보관

건물지하에 지금도 매일 모시를 짜는 분들이 계셨다. 

 

모시는 오랜 기간동안 이용되어 온 직물로서 일명 저포·저치라고 하며, 모시풀 줄기를 꺾어 그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한다. 통일신라 경문왕(재위 861∼875) 때 중국 당나라에 보낸 기록으로 보아 외국과의 교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한산세모시는 한산에서 만드는 모시로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태모시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

표백의 9과정으로 나뉜다.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다. 태모시는 껍질을 벗겨 인피섬유를 만드는 것인데 모시

째기는 태모시를 쪼개는 과정이다. 모시삼기·모시굿만들기는 쪼개진 인피섬유를 이어 실을 만드는 과정이며,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모시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 마지막으로 모시표백은 물에 적신 다음 햇빛에 여러 번 말려  흰모시로 만드는 과정이다.

모시는 근래까지 15새가 제직되었으나 오늘날에는 12새가 극상품으로 제직되고 있다. 1새는 30여㎝의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제직된 것이다. 현재 한산모시의 제사•제직 과정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모시는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우므로 더위에도 통풍이 안되는 움집에서 짜야 했고 바람이 불거나 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섬유공업의 발달과 함께 수요가 줄어들어서 이 지방의 모시짜기 기술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전부다 한산의 여인들이 입과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므로 여인들의 눈물과 한이 어려있는 것이다.

 

한달내내 일해야 고급모시 두필을 잘수 있다고 하신다. 

 더운데도 가습기를 틀어놓고 후덥지근한 지하에서 일하신다.

 전통적인 모시자는 직조기

 모시자는 체험을 해볼수도 있다.

 홍보관 전경

 모시잎

 태모시를 만든느 단계

 

 

 

 한산모시정보관. 휴일인데 결혼식이 열린것 같다.

 모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시해 놓은 전시관

 

 

 

 

 

 

 

 

 

 

 

 

 

 

 

 

 

 모시는 우리민족의 주요입을거리로 희노애락을 함께 해 왔다.

 

 

 

 

 

 

 

 홍보관 앞뜰

 홍보관의 물건들은 판매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너무 어렵고 힘들어 배우는 분들이 없다니 조만간 모시만드는 방법도 명맥이 끊어질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