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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경주]3국통일의 주역들이 묻혀있는 서악권 2 - 김유신장군묘와 한쌍의 두꺼비

by 柔淡 2013. 3. 8.

태종뮤열왕릉에서 북쪽으로 3km정도 가면 왼쪽 언덕에 김유신 장군묘가 있다. 큰길에서 100m 정도

들어간 언덕에 있어 길에서는 잘 안보인다. 예전 사관학교 다닐때 한번 와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부터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주변 지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로서 신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명장 김유신

(595~673). 가야 김수로왕의 12대손인 김유신은 15세 때 화랑이 되어 몸과 마음을 닦았다.

학문과 무예가 뛰어난 신라의 명장으로 삼국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선덕여왕 말년 비담이 군사를

일으켜 왕위를 빼앗으려 할 때 선덕여왕을 도왔다.


진덕여왕의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자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신라 천년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힐 만한 그의 명성에 걸맞게 송화산 동쪽 구릉에

자리잡은 그의 묘는 여느 왕릉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번듯하다. 통일 전쟁 과정과 통일 후

당나라를 몰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해내,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우뚝 선 장군의 묘가 아닌가.


김유신의 사후 문무왕이 비석을 세우게 하였는데, 전하지 않는다. 현재 무덤앞에 1710년 경주부윤 남지훈이

세운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는 비석과 1934년 김해 김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이 있다.

이 곳 동북쪽에 공을 기리고 제향을 올리는 숭무전이 있다. 사후에는 평화롭고 싶었던 것일까?

김유신 묘역의 십이지상 호석은 무장한 갑옷이 아니라 평상복 차림인 것이 이채롭다.


해마다 봄이면 김유신장군묘 입구와 주변 일대에 벚꽃이 아름다워 사람을 불러모았는데, 최근에는 야간

조명으로 새로운 즐거움 하나를 보태고 있다.

 

 

 

 

 

 

 

 

 

 

 

 

 

 

 

 

 

 

 

 

 

 

김유신 장군묘를 들어가는데 입구인 흥무문을 지나자 마자 겨울잠을 깬 두꺼비 한쌍이 힘겹게 배회중이다.

두꺼비는 예로부터 우리 설화에 많이 등장했으며 주로 재물과 복을 가져다 주는 좋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20여년전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음력 정월 초하루에 관사 정원에서 이런 두꺼비를 보고 사진을 찍어 주변에

돌렸는데 정확하게 3년후에 장관급 직위에 진출해서 5년을 재임했다. 본인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분이 그 직책으로 갈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김유신 장군묘에서 이른봄 두꺼비 한쌍을 보니 문득 20년전의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내게도 좋은일이 생기려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