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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경주]죽어서도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문무대왕의 얼이 전해오는 감은사지

by 柔淡 2013. 3. 19.

경주 동해안의 양남주상절리와 파도소리길을  한시간정도 걷고나서 차를타고 봉길리의 문무대왕 수중릉

으로 간다. 계속 걸으면 좋겠지만 읍천항과 문무대왕 수중릉 사이에는 월성원자력 발전소가 있어 걸을수

없기 때문이다.. 문무대왕 수중릉은 일출로 여러번 포스팅했기에 생략하고 거기서 5분정도 거리에 있는

감은사지로 간다.

 

감은사는 원래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문무왕이 지은 절인데, 절을 짓기 시작한지 1년 만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것이‘감은사’이다.

 

문무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해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감은사지 금당 터에는, 신문왕이

절을 지을 때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선왕의 유언에 따라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큰 삼층석탑 두 기와 금당과 강당, 회랑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웅장하고 기품 있는 석탑은 물론이고 가람의 배치도 군더더기 없이 정연하다.

 

문무왕과 신라인의 호국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듯 삼층석탑은 굳건하고 장대한 풍모다. 탑의 상륜부에는

높이 약 3.9m되는 찰주가 꽂혀있다. 찰주는 탑의 상륜부를 장식하는 석재들을 꽂기 위해 세운 쇠기둥인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부식되므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한편, 1959년 발굴 조사 때에는 서쪽 탑에서

화려하고 섬세한 청동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황룡사’, ‘사천왕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호국 사찰 가운데 하나이며, ‘문무왕릉’, ‘이견대’ 와 더불어 신라인들의 호

국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서탑

 동탑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삼국통일시기에 만들어져 신라의 소박함과 씩씩한 기상을 매우 세련되게 표현했다. 금당 앞에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높이가 13.4m로 장대하다.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몸체 돌을 올린 모습으로 처마 밑은 받침이 5단이며, 지붕 위는 곡면을 이루어 통일신라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인다.

 

1959년 12월 서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몸돌에서 건립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었다. 1996년 4월 25일에

동탑을 해체·보수하였는데, 3층 지붕돌의 상면 사리공에서 금동사리함(金銅舍利函)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 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으로 변모한 최초의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서탑

 

 동탑

 

 

 

 예전엔 여기가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감은사터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간절하게 기도하는 분이 있다.

 

 

 

 

 

죽어서도 왜구를 물리치겠다니 참으로 깊은 애국심의 발로이면서 그 시대에도 왜구의 침략이 얼마나 심했으면

국왕이 죽어가면서도 그런 기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왔을때 보다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