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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강화]팔만대장경을 판각했다는 고려시대 최고의 절터, 선원사지

by 柔淡 2013. 5. 24.

삼화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리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선원사지를 찾아 나선다.

 

내가 굳이 선원사지를 가보고 싶었던 까닭은 2년전 합천 해인사에서 있었던 대장경 조판 천년축제에서

느꼈던 감동 때문이다. 천년전 팔만대장경이 이곳  선원사라는 절에서 판각되었다고 알려졌기에 강화도에

가면 선원사를 꼭 한번 찾아 보려고  마음먹고 있엇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선원사지를 먼저 간것이 아니라 연꽃으로 유명한 선원사 연꽃축제장을

먼저 찾게 되었고 약간 헤멘후에 길건너에 있는 절터를 찾을수 있었다.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고종 32년(1245)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가 세운 절이다. 당시 송광사와 함께 고려의 2대 사찰 중 하나였으며 금 불상만 500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조각, 봉안하였다. 이 팔만대장경은 조선 태조 7년에(1398)

서울로 옮겼다가 세조2년(1456)에 현재에 위치한 합천 해인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원사터는 강화 외성지가 있는 도감산의 산줄기가 동서로 달리고, 다시 산 능성에서 남으로 오목하게 뻗어

내려간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후면과 양 측면이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탁 트인 남쪽을 제외하면 사면이

절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할 것이다. 남쪽의 전면은 현재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나 과거 바닷물이 치받아

흘렀었다는 것 등을 감안할 때, 중요 건물지가 들어서기에 매우 적합한 곳으로 보인다. 사적으로 지정된 지형은

사지의 일부로 발굴 현황과 주변 지세를 감안할 때 그 일부에 불과하다. 부분적으로나마 지정된 사적지 외측의

북단과 서단에 동시대의 건물지가 존재했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사적지내는 중앙부를 경계로 동쪽으로는 한단

낮게 물길이 잡혀져 있다. 서쪽은 높으며 다시 동서중심부를 경계로 하여 남북단으로 두개의 층을 이루고 있다.

선원사의 위치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매우 단편적인데 15세기 말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선원사의

옛터가 강화도호부의 남쪽 8리에 있고, 당시 장원서의 과수원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외의 몇몇 관련 기록

에도 ≪동국여지승람≫을 답습하고 있을 뿐, 선원사의 정확한 위치가 명기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나 1976년 조사시

현재의 터에 대형의 주춧돌과 석축·범자문과 연화문류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막새·화려한 보상화문전 등이 수습

되었다. 또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해안가에 인접했던 지리적 특성 등이 감안되어 선원사지로 비정되었다.

또한 인근 마을 이름이 고려시대의 대장도감과 조선시대의 군사도감이 있었던 연유에서인가 도감마을이라고 불리

우기도 하며 대체로 이 지역 전체가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사적지로 지정된 곳은 일부분이며,

산록에 3단의 축대가 구성되어 있는 곳이 절의 중심지로 추정되었다.

사적지로 지정되기 전에는 10여 채 가량의 민가가 들어서 있었고 상당 부분이 인삼밭 등의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현재 선원사지가 사적지로서 지정되어 있지만 그 위치 비정에는 이견도 있다. 곧 1931년 편찬된 ≪속수증보 강도지≫

에는 이전 몇몇 기록과는 달리 구체적으로 선원면 선행리 충렬사 앞 인근 일대를 선원사의 유지(遺址)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강화지역의 향토사가들은 현재의 선원사지를 가궐터라 하고, 충렬사 전면 터가 선원사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원사지

연꽃축제ㅔ장에서 건너다 본 선원사지

 

연꽃축제장

 

 

 

 

 

 

 

 

선원사지 오른족 아래에 소박한 2층 절집이 하나 있는데 2층은 대웅전이고 1층이 팔만대장경 박물관인데..... 

너무 소박하고 볼거리가 없어 박물관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해인사의 박물관에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대로 만들던지, 아니면 아예, 없애버리던지.... 

 

 

 

 

 

 

 

 

 

 

법당 밖에 노천에 불상이 있다.

 

선원사 우보살, 언젠가 매스컴에 보도된적이 있다.

 

 

 

 

 

건너다 보이는곳 우측 상단 파란지붕이

선원사의 산신각이다.

예전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니.... 지금은 연꽃축제장으로 유명하다.

다시 선원사지

 

 

팔만대장경을 최초 만들었던 강화의 선원사지, 그리고 어떤 연유에선지 조선초기에 이 팔만대장경을 인수받은 합천 해인사.

두 절집은 고려시대엔 우리나라 양대 사찰로 손꼽혔다는데 지금 하나는 삼보사찰로 인정받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고

이 절집은 폐사가 되어 이제 겨우 예전의 흔적을 추스르고 있다. 나라나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건물이나 절집에도

역사의 흥망성쇠가 작용하나 보다.